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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시선 앞에서

2021-06-04

내일은 인터뷰 영상 때문에 저 멀리 을지로까지 가야 한다. 출판 프로젝트의 인터뷰어로서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해야 하는 일인데, 문제는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까만 카메라 렌즈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선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즐겼던 적도 있다.


그래, 그랬던 시절이 있다. 아직 볼에 귀여운 젖살이 볼록하고, 군데군데 난 뾰루지가 무색할 정도로 뽀얀 얼굴을 하고 있던 중학생 시절, 만화와 옷을 좋아하던 난 학교 선배를 따라 코스프레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가발과 진한 화장이 더해진 채 카메라 앞에 서면,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 것만 같았다. 허리는 더 꼿꼿하게, 가슴은 쫙 펴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는 것은 내게 아주 특별한 종류의 짜릿함을 주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나는 그 순간 ‘보여지는 사람’이 된다. 3차원에서 살아 숨쉬던 내가 납작한 평면 속으로 들어가 고정된다. 카메라 한 대의 렌즈 속에는 수십, 수백 명의 눈이 달려있는 것처럼 나를 구석구석 살핀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의 시선을 원한다. 누군가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니 말이다. 렌즈에서 뻗어 나오는 그 수많은 시선 앞에서 나는 더욱 진하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는 그렇게 어린 내가 느끼던 시선의 갈증을 흠뻑 적셔주었다.


그러나 촬영의 결과물은 나를 헐뜯었다. 보정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었지만, 자꾸만 결과물에 욕심이 생기자 모든 문제는 나를 향했다. 입체감이 날라가 넙적해진 얼굴과 화장으로 미처 가리지 못했던 잡티, 의상이나 가발의 작은 흠까지 모두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픽셀 단위로 촘촘해진 잣대를 나에게 들이댈수록 나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결국 처음에 나를 매료시켰던 카메라 앞에서의 즐거움까지 퇴색되고, ‘예쁘지 않은 나’를 더 이상 마주하기 싫었던 나는 자연스레 촬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촬영을 완전히 그만두자 이상하게도 카메라 울렁증이 생겼다.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아서인지, 애초에 평소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카메라에 서서 그런지, 렌즈 앞에만 서면 자동으로 표정이 굳고 자세가 뻣뻣해진다. 내가 시선의 완벽한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시선의 대한 갈증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 쏟아지는 열렬한 시선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카메라 렌즈의 서늘한 시선이 아닌 온기가 느껴지는 한 사람의 눈빛이면 충분하다.


사실 카메라 울렁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오길 바라지 않고 사진에 나오는 나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잘 나오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면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이 나오게 될 것이다. 보여지는 나에 대한 욕심을 언제쯤 되면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마스크 덕분에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나를 직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내일 영상에서는 결과물의 나를 의식하지 않고 그 순간에 편하게 몰두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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