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에 대한 노래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던 순간,
드디어 검은색 옷에 빨간색 인디오 전통 판초를 걸친 그녀가 나타났다.
건강이 안 좋아서 마지막 콘서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괜히 마음이 조급했다. 그리고 7년 정도 지나서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나를 지탱하는 막대기 중 하나가 빠져나간, 아주 슬픈 날이었다.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는 1935년 아르헨티나의 투쿠만주, 인디오 마을인 산미겔에서 태어났다. 메르세데스라는 뜻은 라틴어로 ‘해방자’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그녀는 노래를 통해 억압당한 민중을 해방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인디오(디아기타족) 후손으로 아버지는 설탕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부잣집에서 세탁 일을 하던 소시민이었다. 그녀의 노래 인생은 열다섯 살에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애국가를 선창했는데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첫 데뷔 무대였다. 그 후 친구들과 지역 라디오 LV12에서 개최한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친구들이 부추김에 노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혼이 날까 봐 가명인 ‘글라디스 오소리오(Gladys Osorio)’로 자신을 소개했다. 마르가리타 팔라시오스(Margarita Palacio)의 노래 <슬픈 나 Triste estoy>라는 노래를 불러 우승하면서 라디오에서 계속 노래를 하게 된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노래하는 일이 교양있는 여성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때문에 그녀는 대중들 앞에서 노래할 때마다 큰 공포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세 장소가 있다. 그녀의 뿌리였던 고향, 투쿠만과 1957년 음악가 오스카르 마투스(Oscar Matus)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예술적 교육을 받았던 행복한 곳 멘도사, 그리고 유명한 가수로 인정받게 된 첫 무대가 열린 몬테비데오이다. 1963년 2월 11일, 멘도사에서 그녀는 남편과 시인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스(Armando Tejada Gómez), 음악가 티토 프란시아(Tito Francia)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 운동(Movimiento de la Nueva Canción)’ 선언문을 발표한다. 그렇게 그녀는 뿌리 깊은 예술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극복하는 새로운 노래의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대중들과 강한 유대감을 갖는 음악을 선택했고, 젊은 작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했으며, 라틴 아메리카 차원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록, 땅고, 팝과도 적극적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이름을 알렸지만, 1965년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아들과 홀로 남겨진 그녀는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 포크 가수 호르헤 까프루네(Jorge Cafrune), 원주민들의 사회적 불의와 차별에 맞서 싸우던 살아있는 상징인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거장 아타우알빠 유빵끼(Atahualpa Yupanki)와 함께 정치적 요구를 내세운다. 그 당시 발표한 음악들인 ‘나는 노래를 위한 노래를 부르지 않아(Yo no canto por cantar, 1966)’, ‘땅의 외침(El grito de la tierra, 1970), 승리하기까지(Hasta la victoria, 1972)’를 보면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군사독재 시절(1976-1983) 동안 그녀의 음반이 금지되었고,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파리와 마드리드를 다니며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한다. 80년대부터는 땅고와 재즈, 록을 접목하며 더 풍부한 소리를 갖게 된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새처럼(Como un pájaro libre, 1983)’와 같은 많은 음반을 내기 시작했고,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음악가들과 서른네 곡의 듀엣곡을 선보였다. 국내외를 오가며 수많은 활동을 했고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었던 그녀는 말년에 환경 보호 운동에 앞장섰다. 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형제애를 지키기 위해 애쓴 그녀에게 ‘아메리카의 목소리(La Voz de América)’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물론 그외 수많은 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유네스코 친선 대사로까지 임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투병 중이었던 그녀는 2009년 10월 영원히 노래 속에 남게 되었다. 나는 먼 곳에서 그녀의 소식을 들었지만, 국가의 슬픔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장례식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꽃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인터뷰를 했던 한 여성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그녀의 눈빛과 음악은 제게 아주 중요해요.’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끝이 없다. <Todo cambia>, <Gracias a la vida>,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 <Como Un Pájaro Libre>, <Luna Tucumana>.... 다 주옥같은 가사에 심금을 울린다. 우선 무엇보다도 목소리에서 쏟아지는 그 힘은 단연 최고일 것이다. 이번엔 1980년에 스위스에서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사소한 것들에 대한 노래 (Canción de las simples cosas)>을 소개한다. 아래 영상에서는 노래하기 전에 곡을 잠깐 소개하는 젊은 소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녀는 모든 시인은 예언자라는 이탈리아의 시인 체사레 파베세의 말을 인용해서 이 곡을 작사한 시인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스(Armando Tejada Gomez)도 모두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예언자라고 소개한다.
중요해 보이지 않아서 우리 눈에 쉽게 지나치고 그래서 소중함을 잊고 사는 작고 단순하고 하찮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가사가 마음에 남는 곡이다. 모르는 누군가가 이 음악을 듣고 주변에 단순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것이 함께 음악을 듣는 기쁨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