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이제, 그만

풍선초 이야기(26)

by 리오라

응애 잡는 약을 산다느니,

나의 아킬레스건인 풍선까지 들먹이는 걸 보니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요. 중병일까요……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의연한 척했어요.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는 거죠.

병도 삶의 일부예요. 다만 그 일부가 이렇게 나의 전부를 통째로 삼켜버릴 줄은 몰랐을 뿐이에요.


예전에 포도밭 근처에서 살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그땐 아저씨가 수시로 약을 주고 벌레들을 잡느라 애썼죠. 그러면 밤에 난리가 났어요. 포도는 약 기운에 끙끙대고, 벌레들은 죽겠다고 울어대고.. 정말 누구 편도 들 수가 없었죠. 며칠 밤 한숨도 못 자서인지 약 근처에도 안 갔는데 힘이 빠질 정도였죠.

ChatGPT Image 2025년 11월 5일 오후 06_38_06.png

사실 그때 나는 속으로 아픈 포도를 보며 ‘약간 오버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꼴이 딱 그래요. 그 일이 내게도 닥칠 줄이야. 이래서 함부로 남을 평가하면 안 되는 거예요. 세상일은 언제든 반사되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걸까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작은 점 같은 것들이 몸에 붙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냥 먼지려니 했어요. 등 뒤라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걔들이 문제였던 거예요. 너무 작아서 신경도 안 썼는데, 어느새 여기저기 퍼져 있었어요. 몸이란 참 묘해요. 평소엔 아무 느낌도 없던 부위가 아프면 거기밖에 없는 것 같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아프고 나면 확실히 깨닫게 돼요. 몸은 모든 부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요.


내가 괴로워하자, 아뽀야가 옆에서 날 다독이며 조심스레 말했어요.

“응애는 아라크네 친척이야.”

“뭐라고? 걔랑 친척이라고?”

“응. 진드기긴 한데, 거미 쪽 혈통이지. 그러니까 친척 맞아.”

친척이라더니, 내 몸을 거미줄 비슷한 걸로 옭아맨 것도 그 때문일까요.


순간 화가 솟구쳤어요. 예전에 내가 아라크네를 놀려서 그런가, 복수라도 하는 건가? 왜 친척까지 몰래 보내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한 걸까요? 거미줄로 옭아매는 게 왠지 모르게 감정이 실린 것 같았어요.


생각해 보면, 뭐든 너무 들러붙어서 좋은 건 없어요. 마음이든 사람 관계든.

건강하고 오래가는 관계의 비밀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호하게 대답할 거예요.

거-리-두-기!


아무튼 그래서 사람들은, 끈질기게 괴롭히는 사람을 보고 ‘진드기 같다’고 하는 건지도 몰라요.

가끔은 말이 생물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얘네 어떻게 내쫓지? 말 한마디 없이 내게 들어왔단 말이야. 허락도 안 받고.”

“원래 나쁜 일은 소리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걱정 마. 좋은 일도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병명을 알아낸 채 하루가 지나갔어요. 심오가 뭔가 조처를 해주겠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용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노란 봉지를 들고 나타났어요. 친구가 대신 빨리 사줬다며 씩 웃으며 그 안에서.... 하얀 총 같은 걸 꺼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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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분무기 주사였어요.

물을 뿌리는 게 뭐가 그렇게 무섭냐고요? 그건 그냥 물이 아니라니까요.

그 안에는 ‘성분’이 들어있어요. 성분이란 말, 참 편리해요. 뭘 넣든 ‘성분’이라고 하면 정당해지니까요.

사실 사람들은 주사라고 하면 바늘만 떠올리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어요. 이 성분이 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퍼지는 따끔함과 얼얼함, 뭔가 뿌리가 뽑히는 것 같은 그 고통이란…… 상상 이상이에요.


물 한 방울에도 예민한 이 몸에, 그 성분을 함부로 뿌리다니!!

물론, 아파야 큰 다지만, 나는 웃으면서 크고 싶어요. 슬프지 않게, 너무 아프지 않게요.


그런데 심오의 얼굴은 왜 저리도 밝은 걸까요. 나한테 주사를 놓는 게 저렇게 기쁜 일일까요?

뭐라고 중얼거리며 계속 주사를 들이대는데, 정신이 몽롱해져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난 참았어요. 이게 나를 위한 거라니까요.


“풍선이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아프지 마.”


무심히 던지는 심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툭, 하고 무너졌어요. 그 순간 약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가 내 몸을 타고 흘렀어요. 이 멈추지 않는 것이 약일까요, 눈물일까요…… 병 때문일까요, 감동 때문일까요.


늘 말하지만, 심오는 중간이 없어요. 약을 뿌릴 땐 끝도 없이 뿌려요.

그 끈질김 덕에, 눈물이 바로 약으로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어요.


내일도 이걸 또 맞아야 할까요? 그래도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응애가 마음을 접고, 내게서 조용히 떠나가길 바랄 뿐이에요.


응애야, 집착은 이제, 그만……


조금 쉬려는데 옆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어요.

울 기운도 없어 보이는 오렌지자스민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더 아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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