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성숙해질까요?

풍선초 이야기(27)

by 리오라

며칠째 주사를 맞으니 힘이 계속 빠지는 것 같아요.

몸에서는 계속 이상한 감각이 올라오고, 어딘가에 응애가 숨어서 나를 괴롭히는데, 도무지 행방을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몰래 괴롭히는 건 정말 치사한 일 아닌가요.


이 집 애는 틈만 나면 주사기를 들고 내게 다가와요. 물론 아무 때나 막 뿌리진 않지만, 그 작은 구멍이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마치 풍선을 불다가 터뜨릴까 두려운 그 순간처럼 뛰어요.


게다가 잎을 들춰보고는 “아직도 안 나았네…” 하며 한숨을 쉬는 모습까지 지봐야 한다니..

그 한숨 소리가 잎맥을 타고 내 몸속까지 파고들어,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에요.

도대체 누가 아프고 싶겠어요. 아무튼, 얼른 나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플 때도 서서히 그렇게 되었듯, 나을 때도 조급하면 안 되겠죠.

몸도 마음도 급하게 밀어붙인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요. 살다보면 참기 힘든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서히 나아지는 몸’이에요. 아파 본 자만이 아는 사실이죠.


문득 개구리 친구 이야기가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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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서 미지근한 물에 들어갔다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바람에 참변을 당했다는, 그 슬픈 이야기 말이에요. 주변 식구들은 “진짜 뜨거운 물은 아니었어!”라며 오열했지만, 결국 그 친구는 그 물에서 나오지 못했어요. 그게 인간의 무심함이었는지, 본인의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예요.


이후로 나는 서서히 변하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미지근한 것, 애매한 것, 그런 것들이 가장 무서운 법이에요.

차라리 뜨겁게 아프거나, 차갑게 나아버렸으면 좋겠는데, 이건 그 중간 어딘가라 더 지치는 느낌이에요.


그나저나, 정말 궁금해요. 응애는 왜 하필 나를 고른 걸까요?

정말 아라크네 때문일까요? 지난번에 내가 걔 헛소리를 꼬집은 게 화근이었을까요? 틈만 나면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몸이 아프면 생각도 아픈 쪽으로 흐른다는 말, 실감해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몇 달 전 누군가 멋진 장식을 팔러 왔던 게 떠올라요.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밋밋한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그 잠깐 걸쳐본 적이 있었어요. 물론 사지는 않았죠. 그런데 그 얇은 레이스 장식,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응애의 통보였는지도 몰라요. 분명 정중히 거절했는데, 이렇게 다시 들러붙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그것도 몰래.


생각해보면 우리 세계에도 겉과 속이 다른 존재들이 꽤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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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것들. 달콤한 향기와 고운 빛깔, 심지어 꿀까지 들고 다니며 유혹하는 친구들, 알고 보면 끈적이를 흘려서 다른 벌레들을 붙잡아 먹으려는 속셈이에요. 그중에서도 무시무시한 파리지옥은 아주 유명하죠. 내 친구 제비꽃을 꼭 닮은 예쁜 아이도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한동안 충격이었어요. 비브리스나 코브라릴리 같은 애들도 겉은 곱지만 속은 장난 아니에요. 물론 그들도 살아야 하니 그러겠지만, 자기가 살려고 남을 울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조용히 커서, 조용히 풍선을 맺고, 바람이 불면 사뿐히 날아오르며 인생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 와서 풍선을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기운이 빠져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살아야 할 이유도 방향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오, 여기 있었구나! 완전 미니 거미네!
네가 풍선이를 괴롭혔구나!”


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심오가 갑자기 소리치며 무언가를 휴지로 휙—잡아냈어요.

뭔가 줄을 타고 내려오다 딱 걸린 모양이에요.


심오는 귀만 좋은 게 아니라 눈도 매의 눈이었어요.

큰 눈이라 많은 걸 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리하기까지 할 줄이야. 아무튼 응애는 그렇게 허무하게 다른 세상으로 사라졌어요. 잠깐 마음이 짠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좀 통쾌했어요. 나를 괴롭혔으니 그 정도는 당해야죠.


이제 내 몸에서 그 하얀 줄들이 사라질까요? 숨 쉬는 게 좀 더 편해질까요? 조금은 안도가 돼요.

하지만 기력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몸에 돋아난 검은 점들, 몸을 휘감았던 줄기들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더 기다려야 해요.


정말 아픈 만큼 성숙해질까요?

나도 그렇게 될까요?

풍선을 다시 맺을 수 있을까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거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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