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풍선초 이야기(29)

by 리오라

날 아프게 했지만, 그리고 조용히 말없이 떠난다고 했지만, 그래도 응애를 배웅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몸살 기운 때문인지 그만 잠이 깊게 들고 말았죠. 그래도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달려온 달님이랑 별이랑 구름 아줌마가 응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니 다행이에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오후까지 늦잠을 잔 덕분인지 한결 몸이 가벼워졌어요. 가려움도 덜하고 숨도 잘 쉬어지고 기운도 조금씩 돌아왔어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심오도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라며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그 시선을 피하는 척 딴청을 피웠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다시 예전처럼 풍선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잎 하나를 괜히 들썩였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에 묘한 정적이 흘렀어요. 내가 예민해진 탓만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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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자?”

밤사이에 왜 저렇게 말랐을까요. 얼굴이 누레진 것 같은데. 향도 나지 않고. 아직도 많이 아픈 걸까요.

“오렌지자스민은 갈수록 몸이 안 좋아졌어. 너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내 걱정스러운 눈빛을 알아챈 아뽀야가 대신 조용히 말했어요.

“왜 말 안 했어?”

“너도 많이 아팠잖아. 걱정까지 하면 더 아플까 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나만 신경 쓰느라, 친구를 챙기지 못한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렀죠. 나는 오렌지자스민 쪽으로 더 고개를 돌렸어요.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어요. 그러자 오렌지자스민은 나를 살짝 쳐다보며 희미하게 웃고는 금방 다시 고개를 떨구었어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아뽀야를 바라보았어요. 아뽀야의 눈에는 이미 울음이 가득 차 있었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더 생각도 하기 전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어요.


어느새 심오와 주인아줌마가 내 곁에 다가와 있었어요.

“얘는… 안 되겠어. 응애가 너무 많아서 다른 화분에도 다 퍼질 것 같아. 아무리 잎을 닦아주고 약을 뿌려도 나아지질 않아. 이러다 다른 애들도 다 위험해지겠어.” 나는 아줌마의 말에 온몸의 기운이 빠졌어요.


순간, 그동안 오렌지자스민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가장 먼저 집안을 가득 채우던 향기가 코끝을 가득 채웠어요. 하지만 그 향기는 이내 뿌연 안개처럼 변했고, 환하게 웃던 모습도, 뾰로통하던 모습도, 조잘대던 모습도 모두 희미해졌어요. 그 향기가 짙을수록 내 슬픔도 두꺼워졌어요. 질투 나게 예뻤던 친구를 더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 울음도 얼어붙었어요.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가 하나씩 쌓여 등이 꺾이는 것아 몸을 가눌 수가 없었죠.


순간, 창가에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와 내 앞에 섰어요.

그리고는 휘파람 같은 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어요.


“안녕,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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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작은 잎 하나가 떨리더니 그 향이 온몸으로 퍼졌어요. 나는 아뽀야를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그 말을 함께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바람을 기다리면 되는구나. 우리는 영원히 헤어진 게 아니구나.'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오렌지자스민의 향기가 온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어요. 오렌지자스민은 아주 조용히 향기 속으로 스며든 것 같았어요.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눈앞에서는 사라지지만, 결국은 소멸이 아니라 더 큰 흐름 속으로 스며드는 것.


그렇게 나는 바람 한 줄기를 바라보며 그 위에 내 손을 대보았어요. 그러자 손끝으로 다시 향기가 전해졌어요. 오렌지자스민은 그렇게 나와 악수하고는, 가뿐히 사라졌어요.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야 했어요. 먹먹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이 시간도 멈추게 해요.

빠르게 가는 것도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

이런 시간도 정말 약이 될까요...


며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얼른 이 슬픔이 그리움으로 변했으면 해요.

슬픔이 이렇게 날카로운 줄은 몰랐어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슬프고,

훨씬 더 외로울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요.

친구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더 많은 기억이 찾아오네요.

그래서일까요?

더 이상 오렌지자스민을 볼 수 없는데,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오렌지자스민은 바람을 타고 내게 올 거예요.

이제는 그 바람을 많이 기다리게 될 것 같아요.

바람이 지나가면 분명 내게 그 흔적이 남을 테니까요,

우린 그렇게 만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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