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31)
오늘도 나는 몸에 잔뜩 달린 풍선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해요.
이 집에 오는 사람들은 다 한 마디씩 해요.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 보네.”
“책에서만 봤는데, 진짜 집에서 이렇게 잘 자랄 줄이야.”
“너무 예쁘다~” 하며 이리저리 만져대는 통에, 나는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어요.
몇 번이나 “그만 좀!” 하고 소리쳤지만,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어요. 듣고도 그런 거라면, 정말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어요. 바로 조그맣고 눈망울 큰 아이들이죠. 그들은 경고 따윈 무시하고, 무조건 직진하거든요.
어느 날은 한 아이가 갑자기 나를 꾹 누르는 바람에, 내 인생이 ‘펑’ 하고 터져버릴 뻔했어요. 말랑말랑한 나를 만졌다가 놓았다가, 조물조물 만지는 통에 재채기를 할 뻔했죠. 풍선이 많이 나올 때는 재채기를 조심하라는 말이 떠올라 심장이 덜컥했어요. 스스로 풍선을 터뜨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니까요.
그때, 나비 머리핀을 한 조그만 여자아이가 다가왔어요. 중얼거리며 또다시 나를 건드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풍선 한 다발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어요.
“그만 만져! 풍선이가 싫어해!”
심오가 나비보다 더 빨리 내게 날아왔어요. 정말 내 말을 듣는다니까요.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에요.
“너도 계속 만지면 싫잖아. 똑같아. 풍선이도 그래.”
그 여자아이는 잠시 시무룩하더니, 다행히도 심오가 대신 준 인형으로 관심을 옮겼어요. 덕분에 나는 살았고요.
요즘 하늘은 유난히 높아요. 구름 아줌마가 안 보이는 날이 많지만, 거기 있는 건 알아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창밖을 보니 나뭇잎들이 슬쩍 다른 옷을 갈아입었어요. 그토록 초록색을 고집하던 나도, 이번에는 옷을 갈아입고 싶어 졌어요. 우리는 따로 옷을 사지 않아요. 신기하게도 이맘때쯤이면 누군가 여러 벌을 집 앞으로 가져다 놓아요. 아무도 그 ‘누군가’를 본 적이 없지만, 다들 고맙게 생각해요.
사람들은 계절마다 옷을 사느라 돈을 많이 쓴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공짜예요. 그것도 맞춤형으로. 다만 조금 늦게 도착하면 간혹 투덜대는 친구들도 있어요. 공짜에 불평하는 걸 보면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어 져요. 산타클로스는 겨울에만 다니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아무튼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옷을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죠. 나는 아직 새 옷을 받지 못했지만, 창밖 친구들이 하나둘 갈아입는 걸 보니 곧 받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내가 필요한 것들이 딱 맞춰 오는 걸까요?
새 아줌마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지만, 도통 말을 안 해줘요. 비밀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꼭 속으로 간직해야 할 것, 나누고 싶은 이들끼리만 나누고 싶은 것, 꼭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것. 진짜 비밀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는 거예요. 그건 결국 때가 되면 밝혀지겠죠.
사실 내게도 그런 비밀이 있어요.
내 말을 알아듣는 심오. 혹시 이 비밀도 알아챘을까요? 가끔 의심스럽지만,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실 풍선 안에는 뜨거운 게 들어 있어요. 그래서 그 뜨거운 것들이 식을 때까지, 누구나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풍선에 담아 숨겨두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만질 때마다 그 뜨거운 게 튀어나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그건 검정과 흰색이 섞인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때때로 나는 온몸이 뜨거워져요. 어떤 모양이 나타날지 궁금해서요. 다른 친구들 몸속에도 그런 게 있어요. 하지만 너무 뜨거워 다 타버려서, 까맣게 남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달라요. 내 안에는 타버리지 않은 모양이 있어요.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는 모양, 기분 좋게 하는 모양. 그게 꼭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내가 왜 이 집에 왔는지, 왜 아프고 고생을 해야 했는지 오래 고민했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아요. 그 모양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여기 온 게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도 있어요.
심오가 서운해해도, 나는 떠나야 할지도 몰라요.
아니, 내 마음이 바뀌어도, 나는 이미 떠나는 중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모양이…
정말 제대로 나올까요?
가끔 그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속상해하던 친구들이 생각나요.
제발, 내 안에 있는 그 모양은
예쁘게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꼭!
그래서 심오가 활짝 웃게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