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내 인생의 후반부

by lapuncha

얼마전부터 글을 볼때 눈에 불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왼눈이 말썽이었다. 처음엔 피곤해 그런가 싶어 며칠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른때는 문제를 못느끼다 가까운데 있는 글씨만 보려하면 영 어색하고 시간이 걸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시간이 없어 바로 병원을 못가고 지난 주에서야 겨우 병원엘 갔다. 주말 병원은 왜이리도 붐비는지.

눈에 이상있다 싶은 사람들은 애 어른 할거 없이 모두 모인것 마냥 인산인해였다. 한참을 기다리니 시력검사를 시작했다. 기계 앞에서 시키는대로 나를 맡기고 그림이며 바람이며 반짝이는 빛들의 관문을 지나 드디어 익숙한 시력검사 판 앞에 앉았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오른 눈 검사를 하며 그래 이런거지 하다가 문제의 왼눈 검사 할때는 갑자기 한글, 숫자도 못뗀 아이마냥 참 이게 그건지 그게 이건지 속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왠지 난시가 다시 시작된 불길한 느낌.

난 09년도에 거액을 들여 라식 수술을 했다. 중학교때까지 양눈 1.5이던 시력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이상신호가 나타났다. 반에서 제일 큰 키였음에도 민망함을 무릎쓰고 맨 앞자리에 앉아야했던 이유는 비오는 날이면 더 심해지는 난시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글씨는 자기들 멋대로 춤 추듯 겹쳐보이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안경이며, 렌즈며 꽤 오랜 시간 불편한 교정시력의 인생을 살았다. 라식이라는 신기술의 시대가 열렸을 때 난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박봉의 지갑을 열어 거액을 내 인생에 투자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랬었다.

만족스러운 지난 10여년의 삶을 살았다고 난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10년 정도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던것 같다, 미련맞게.


이제 이 모든 검사 끝에 나와 마주한 의사는 내게 처음 '노안'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단어를 선물했다.

마치 '당신은 이제 당신의 새로운 인생의 단계에 잡어든겁니다' 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남들 인생에서는 흔하게 듣고 자주 경험들 하던,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고 아니면 최소한 아직은 아니라고, 할수만 있으면 최대한 연기하고 싶었던 그 단어.

요즘 들어 몸 여기저기 예전같지 않다고 느꼈던 그 모든 징후의 원인이라고 외치고 있는 바로 그 단어.


나의 눈은 난시에 근시 원시 짬뽕이 되어 있었고 그건 어쩌면 40 중반도 막 지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향해 궤도를 틀고 있음을 깨우쳐주는듯 했다.


그 모든 검사와 진료 끝에 난 안경도 수술도 아닌 인공눈물 만 한가득 받아 돌아왔다. 현재는 따로 치료 할게 없고 자연스럽게 더 안좋아질때까지 기다렸다 치료 받으라는 의사의 말 이었다. 그 말 참 씁쓸하네.


당연했던 모든것들이 하나씩 불편해지겠지. 불편함이 다시 자연스러워질테고 모든 불편함이 더이상 불편한게 아닌것이 될때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모든 당연했던 건 원래 그렇지 않았던것 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후반부는 다시 놓는 연습인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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