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휴가를 갑시다

(1)

by 정서정



내내 삭막한 마음이었다.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을 졸이는 일은 참으로 내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에는 하나 걸러 하나씩 못 살겠다는 기사가 즐비하고, 누구를 만나도 모두에게 힘든 일만 있는 것 같았다. 마음 속 불안이 현실의 불평들을 먹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을 때,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불안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때쯤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불안과 우울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연락이 닿는 사람들에게 용기 내어 메신저를 보냈다. 몇몇은 잘못 온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고, 몇몇은 짧게나마 답을 주었다.


- 기운 내.


첫 번째로 받은 친구의 메시지였다. 형식적인 위로인 걸 알아서 어쩐지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오히려 기운을 내는 방법을 영영 잊어버린 것 같았다. 괜히 속이 상해 말릴 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방울이 두 방울이 되고, 세 방울이 네 방울이 되다가 끝내는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짧은 메시지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도망치듯 채팅방을 나갔다.


딩동. 어떻게든 눈물을 멈춰보려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또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아직 울상인 얼굴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 너무 우울해 하지 마. 취업만 되면 괜찮아질 거야.


이번에는 애써 모른 척 하던 괴물의 얼굴을 불쑥 대면하게 된 것 같아 속이 거북해졌다. 그래, 나는 취업준비생이지.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잘렸던 편의점 알바 생각이 났다. 사장님은 내가 손님이 없을 때 구석구석 청소하지 않고 앉아서 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고 했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구 훔쳐내다 말고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두드렸다. 꼭 체한 것 같이, 가슴 한 가운데에 뭔가가 꽉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옆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엉엉 울고 보니 쿠션에는 내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이렇게 울었던 게 얼마만이더라, 하고 생각하던 나는 지난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이렇게 펑펑 울어버렸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괜히 한심한 생각이 들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이 메시지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괜히 여러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후회하자마자 또 다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벌써 두 번이나 실망하고도 나는 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채팅창을 열었다.


- 많이 힘들어서 어떡해. 이번 주말에 같이 원데이 클래스 하러 갈래?


그럼 그렇지. 이 친구는 내가 무슨 말만 꺼내면 무언가를 자꾸 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기분전환이라도 될까 해서 두어 번 쫄래쫄래 따라갔지만, 기분전환은커녕, 생활비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나는 무언가를 즐기기에는 너무 피폐한 마음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메시지에 형식적으로 답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아마도 친구는 내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침대에 누워 내 주변인들을 떠올리며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평범한 나날들이 떠올랐다가 스러져갔다. 한 군데도 특별한 데 없는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어느 구석쯤이 쿡쿡 찔리듯 아팠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인생을 살지 못했을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지?


잠잠하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어른거렸다. 울음을 참아보려고 입술을 비죽이다가 결국 터져버린 눈물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소리 내 흐느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나를 책임질 수 없는지 괴로운 마음이 심장 한가운데를 거칠게 할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누구일까. 엄마아빠한테 우는 걸 들키면 안 되는데. 혹시나 면접을 보라는 전화일까? 아니라면 차라리 광고전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조금 꺼림칙한 몸놀림으로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내 생각의 한계를 비웃듯 거기에는 의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고희나. 졸업할 때까지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대학 동기였다.


이 애가 지금 내게 전화할 일은 결단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내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 애한테도 보낸 모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만에 갑자기 친하지도 않았던 애에게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메시지를 받았으니 그만큼 황당한 일도 많지는 않을 거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이 애한테도 메시지를 보냈을까. 아무래도 바보 같은 나를 탓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상치 못한 발신자에 훌쩍거림도 잦아들었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끊이지 않는 벨소리에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영서? 안영서 맞아?”


“으응. 안녕.”



창피했다. 좋은 일로 멋지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찌질하게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뉴스로 생존을 알리다니. 일자리를 얻기 위한 4년이라는 노력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목 한가운데를 콱 눌러 버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가슴속으로 다시 집어넣느라 목구멍이 아팠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겨우 안녕을 건넸다. 그렇지만 내 목소리가 어떻든 말든 희나는 꽤 쾌활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 뭐 해?”



다짜고짜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서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홀린 듯 대답했다.



“글쎄. 별로.”



그러면 희나는 또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은? 모레는?”


“그...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내가 당황스러운 티를 내든 말든 희나는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너 아직도 식수동 사니?”


“으응.”



뜨뜻미지근한 대답도 마음에 드는 건지 금세 오케이를 외친다.



“한 시간 후에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옷 두어 벌 챙겨 나와.”


“어? 뭐라고?”


“너희 집 도착하면 전화할게. 끊는다!”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약속을 한 건가? 고희나하고?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약속은 아니었다. 희나의 통보였을 뿐. 어쩐지 허탈한 마음이 들어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곧 희나가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4년 만에 처음 만나는 동기를 눈곱 낀 얼굴로 마주할 수는 없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은 일 년에 한두 번도 잘 일어나지 않는 대사건이었다. 나는 어쩔 줄도 모르면서 조급한 마음에 옷장을 뒤졌다. 면접용 정장 하나 빼고는 다 변변찮은 옷들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쇼핑을 한 게 먼 옛날인 것 같았다. 그 돈이면 밥이 몇 끼인지 계산하며 포기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뭐라도 하나 정도는 사둘 걸.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 애를 만나서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잠옷차림으로 문밖을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옷장 구석에서 억지로 찾아낸 옷가지를 들어 살펴보았다. 유행이 지난 그림이 박힌 티셔츠 하나와 그나마 늘어나지 않은 긴 바지 하나. 영 마뜩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희나가 말한 한 시간에서 남은 시간은 오 분뿐이었다. 옷을 입고 만약을 대비해 에코백에 잠옷 두어 벌을 넣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다시 고희나.



“나 도착. 지금 바로 내려와.”



용건만 간단히도 아닌데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가 끊어졌다. 일방적 통보에 나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온 정성을 봐서라도 얼굴 보고 돌려보내야겠다 싶었다. 나는 어깨에 에코백을 메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집은 고요하게 나의 외출을 지켜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기분은 정말이지 묘했다. 누군가 나를 방문했다는 반가움과, 그게 고희나라는 어색함과, 그 애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한 불쾌함과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얽히고설켜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지금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도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벌겋게 부은 눈에 조금 몽롱한 정신으로 1층에 내렸다.


밖으로 눈을 돌리자 공동현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샛노란 경차가 눈에 띄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반사해서 그런지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공동현관의 자동유리문이 열리자마자 숨 막히는 더위가 코로 입으로 훅훅 들어왔다. 달궈진 공기는 내 몸을 익혀버릴 것처럼 맹렬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샛노란 경차의 검은 유리창이 쭉 내려가더니 낯익은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안영서!”



방금 전 핸드폰으로 건너왔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전보다 조금 마른 것 같은 모습의 고희나였다. 그 애는 내가 쳐다보자 씩 웃어보였다.



“무슨 일이야?”



분명히 교양 있게 인사하고 잘 타일러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는 다짜고짜 본론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지만 희나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휴가 가자.”



올 해 내가 들은 최고로 황당한 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희나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애가 원래 이렇게도 대책 없고 충동적인 애였던가? 내가 기억하던 고희나는 동기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공부 잘 하는 그냥 그런 평범한 애였는데. 내 기억 속 고희나를 꺼내보다 말고 눈앞의 얼굴을 바라보자 어쩐지 이질감이 들었다. 꼭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내가 황당해서 묻자 희나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킨다.



“휴가 가자고. 타.”



찌는 태양 아래 가만히 얼어서 서있는 나를 보던 희나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잽싸게 차 밖으로 나와 내 가방을 낚아챘다.



“짐은 이게 끝이지?”



차 뒷자리에 내 가방을 실어버린 희나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조수석 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뭐라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꼼짝없이 희나의 차에 올라탔다. 내가 뭐라 항의할 틈도 없이 희나는 재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너 진짜 고희나 맞아?”



차가 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할 때 즈음 눈치를 보던 내가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그마저도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말이라 차 안 공기가 얼어붙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희나는 낄낄대며 웃었다.



“왜? 대학 때 나랑 그렇게 달라 보여?”


“응.”



단호한 내 대답에 희나는 다시 깔깔 웃었다. 지나치게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 신경쓰였다. 왜 자꾸 웃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건데?”


“아. 우리 할머니 집. 그런데 할머니는 안 계셔. 작년에 돌아가셨거든.”



상상도 못했던 말에 나는 대답도 못하고 멀뚱멀뚱 그 애를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 내가 얘를 위로해야 하는 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또 한 번 픽 웃은 희나가 말을 이었다.



“할머니 오래 사셨어. 아픈 데도 있으셨고. 할머니 집은 이제 우리집이랑 고모네랑 별장처럼 쓰고 있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나는 꼭 짚어내야 하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너 이거 납치 아니야? 네 마음대로 이렇게 사람을 데려오면 어떡해.”



내내 웃던 것과 달리 내 말에 조금 시무룩해진 희나는 눈으로 힐끗대며 내 눈치를 살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애에게 마구 휘둘리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미안. 나 혼자 가기는 싫어서 그랬어. 이렇게 안하면 너도 안 간다고 할 것 같고. 한 번만 봐주라. 다시는 안 그럴게.”



어차피 이번에 보고 또 언제 볼지 모르는 사이인데 다음에 안 그런다는 약속이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대체 뭐 하러 가는 건데?”



미간을 찡그린 채로 내가 다시 물었다. 희나는 혀를 날름 하고 히히 웃더니 반달눈을 하고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안 할 건데. 가 봐서 하고 싶은 거 생기면 하고.”



결국 아무 계획도 없다는 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뾰족하고 날카롭게 돋아난 마음이 그 애를 잔인하게 찌르며 화를 냈을 텐데 나는 어쩐지 그렇구나 수긍하는 마음이 들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차 안의 시원한 에어컨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기의 티끌 없는 웃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너 정말 이상한 애야. 너 이런 앤 줄 몰랐어.”



나는 체념하듯 조수석 의자에 파묻히듯 기댔다. 운전을 하는 희나의 옆모습은 쨍하니 밝아보였다. 햇빛을 받아 빛나던 이 샛노란 자동차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쉬다 오자. 그러다 좋은 일이라도 생길지 어떻게 알아.”


“그랬으면 좋겠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새나가는 내 대답에도 희나는 그럴 거라며 또 웃었다. 이 애는 뭐가 이렇게 행복할까 하고 뽀얀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