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희나가 말했던 대로 우리의 휴가는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동네 슈퍼에서 대충 장을 봐 들어간 희나의 할머니 집은 어디서 많이 보던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녹이 슨 파란 대문 안쪽에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 텃밭이었을 흙더미들이 담장 근처에 조금씩 흩어져 있었다. 마당 안쪽에는 열 몇 평 남짓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집이 있었는데 알루미늄 섀시로 된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빨간 지붕 아래 굳게 닫힌 문을 희나는 손쉽게 열었다. 문이 열리며 나는 드르륵 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워 누군가 이 집을 관리하긴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닫힌 문 안의 무더운 공기에 나와 희나는 숨이 턱 막혀 몇 번이나 기침을 했다. 뜨거운 공기를 빼내느라 우리는 온 집안 창문을 다 열고 덜덜거리는 구형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은 보기와는 다르게 잘 작동되었다.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그 다음은 청소였다. 바닥과 물건들에 쌓인 먼지들을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 닦는 데 한참이 걸렸다. 대충 누울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는 이미 해가 긴 그림자를 남기며 사그라지는 때였다. 나는 거실에 대자로 누웠다. 오랜만에 온 몸을 다해 온 집안을 쓸고 닦았더니 벌써 몸 이곳저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배고파.”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아까 전 들렀던 휴게소에서 시킨 우동이 전부였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니 시간은 벌써 여섯시가 훌쩍 넘었다. 내 투정 섞인 말을 들은 희나는 내 옆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말했다.
“뭐 먹을까? 아까 우리 뭐 샀지.”
희나도 힘들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몇 발자국 앞에 널브러진 장바구니를 열어볼 힘도 없는지 대충 발가락만 까딱거린다. 내가 누운 채로 희나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그 애의 마른 얼굴은 핏기 없이 하얗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저녁은 내가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하얗게 질린 것 같은 얼굴을 보고 말했다.
“라면?”
희나는 나와 반대로 방바닥에 픽 하고 누웠다. 이젠 반대가 된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며 희나는 졸린 것처럼 웅얼웅얼 대답한다.
“좋지. 라면 오랜만이다. 와아.”
싱거운 화답에 힘입어 나는 냄비에 물을 붓고 아까 슈퍼에서 산 라면 두 봉지를 꺼냈다. 오 분이나 지났을까, 팔팔 끓는 냄비 속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조용한 희나를 돌아보니 그새 눈이 감겨있다. 피곤할 만도 하지. 상을 차리고 그릇과 수저를 놓고 라면냄비까지 세팅한 후에야 나는 희나를 깨웠다.
“라면 먹어.”
“응.”
잠결에 뭉개지는 대답소리가 몽롱하다. 이대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축 늘어져 누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제야 빈틈없이 감겨있던 눈이 게슴츠레 빛났다.
“와아. 라면이다. 고마워.”
큰 감흥 없는 억지 반응이 웃겨서 나는 풋 웃어버렸다. 희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천천히 라면을 덜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방바닥에 붙기라도 한 듯 늘어져있던 희나는 다음날이 밝자마자 노란 차를 타고 내 앞에 등장했던 그 애로 돌아갔다. 에너지가 너무 정반대라서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나. 나는 내가 알았던 스물 몇 살의 고희나를 떠올렸다. 수줍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여러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던 희나는 딱히 기복이라고 할 만한 게 없던 애였다. 그 생각도 잠시, 나의 과거가 떠오르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방금까지 하던 생각을 흩어버렸다. 스물 네 살의 나는 지금처럼 쉽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아주 질 나쁜 생각이었다.
내 못된 생각이 들키기라도 할까봐 나는 기분 좋은 희나 옆에서 괜히 얼쩡댔다. 희나는 아침을 해 준다며 부엌에서 분주했다. 계란을 부치고 빵을 굽고 나름 열심히 토스트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관심 없는 척 희나에게 물었다.
“오늘 계획은 뭐야?”
“당연히 그런 거 없지. 우리 오늘 뭐 할까? 노래 틀어놓고 책이나 읽을까?”
항상 소설책 한 권씩을 끼고 다니던 과거의 고희나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든지.”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하든지 말든지 희나는 얼른 차에 가서 짐을 잔뜩 안고 돌아왔다.
“이게 다 뭐야?”
“음, 이거는 LP하고 턴테이블. 그리고 이거는 내 추천도서들. 하나 골라잡아 봐.”
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희나는 턴테이블을 설치한다고 꼼지락꼼지락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에코백에 몇 권 들어있는 책을 꺼냈다. 베스트셀러라고 들었던 것 같은 책 두어 권과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단편집 몇 권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제일 그럴듯한 제목의 책을 들어 뒷면을 살펴보았다. 유명한 책이 아니라서 그런지 딱히 추천사 같은 것들이 쓰여있지는 않았다. 다만 책 내용의 일부인지 인상적인 표현 몇 가지가 써 있었다.
“됐다.”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턴테이블 설치를 마친 희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져온 LP 중 하나를 재생시켰다. 오랜만에 듣는 치지직 소리와 곧 울려퍼지는 깊은 소리의 클래식 음악이 어쩐지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렇다니까.”
희나와 나는 나란히 베개 하나씩을 끼고 엎드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등 뒤로 스쳐가는 선풍기 바람은 충분히 시원했고 음악은 잔잔하게 흘렀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을까. 내가 단편 몇 개를 읽는 동안 희나는 책을 읽다 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제 운전하고 내려와서 집 청소까지 하느라 힘들기는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었다.
그렇게 다시 책을 펼치는데, 마당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미야옹. 야옹. 동네에서 사는 고양이 소리인 것 같았다. 호기심이 일어 밖을 내다보는데, 노랗고 진한 줄무늬 몇 개가 있는 아주 작은 고양이가 겁도 없이 이 집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문가로 가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야옹.”
내가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그 녀석은 고개를 쓱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래도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것 같아서 집에 줄 게 없나 생각하다가 어제 사온 참치캔을 떠올렸다. 나는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캔을 따고 얼른 물에 대충 헹궈 그릇째 마당으로 가지고 나왔다. 다행히 고양이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마당 한쪽에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야옹.”
내가 또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그녀석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그릇을 마당 중앙쯤에 내려놓고 다시 마루로 돌아와 걸터앉았다. 이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할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고양이는 나와 그릇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호기심이 동하는지 천천히 마당 중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몇 번 돌아보는 게 잔뜩 경계중인 것 같았다.
“뭐 해?”
어느새 내 등 뒤로 다가온 희나가 내 어깨 즈음에 얼굴을 기대며 물었다. 나는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소리를 냈다.
“동네 고양이인가 봐. 배고픈 것 같아서.”
희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계심을 풀었는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건지 고양이가 결국 그릇에 있는 참치에 입을 갖다대기 시작했다. 한 입 맛을 보더니 허겁지겁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목이 마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물을 떠서 고양이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의외고 고양이는 내 생각보다 참치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내가 옆에 물그릇을 내려놓자 나를 쓱 한 번 본 고양이는 내가 뒤로 물러서자 찰방찰방 목을 축이고 참치 먹기를 반복했다.
나와 희나는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고양이의 행동을 숨죽여 살폈다.
“진짜 귀엽다.”
“응. 고양이한테 밥 주는 건 또 처음인데.”
희나는 고양이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LP가 재생을 마쳤는지 턴테이블이 멈추고 조용한 정적이 일었다. 고양이는 참치캔 하나를 거의 다 비우고 물로 입을 축이더니 우리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뚫어지게 우리를 쳐다보던 고양이는 곧 몸을 날려 대문 아래로 사라졌다.
“많이 배고팠나봐.”
“그러게.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것도 잘 먹고.”
잠시 고양이를 떠올리며 킬킬대던 우리는 다시 선풍기 바람에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일도 그 고양이가 우리를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 읍내 마트에서 고양이 사료를 샀다. 며칠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다음날 우리가 말도 안 되는 그림을 끄적이고 있을 때, 어제 그 녀석이 마당에 나타났다. 이제는 우리를 살필 여유도 있는지 반가워하는 우리를 가만히 살펴보고 앉아있다. 나는 얼른 어제 산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담고 물그릇도 마련해 마당으로 나갔다.
“자, 먹어.”
내가 그릇을 내려놓고 물러서자 그 녀석은 우리를 몇 번 돌아보더니 사료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러더니 오늘은 점잖은 태도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잘 먹네.”
“다행이다. 비싼 걸로 사길 잘 했나봐.”
희나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킥킥 웃었다. 나와 희나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함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이전에 우리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편안한 시간이라 나는 이상하기도, 즐겁기도 했다. 그동안 갇혀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어쩐지 짜릿한 기분이었다.
“고양이 이름 지어주자.”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희나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니 꼭 들어줘야만 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이름을 떠올렸다. 노랑이, 치즈, 대장, 참치, 호랑이. 다양한 이름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다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희나가 문득 말했다.
“행복이 어때? 우리의 심심한 휴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그거 말 되네.”
“그럼 흔하지만 좋은 의미가 담긴 행복이로 이름을 정하겠습니다. 행복아, 맛있게 먹어.”
사료를 열심히 먹고 있는 행복이 뒤로 희나가 말을 걸었다. 그러든 말든 행복이는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내일도 올까?”
“왔으면 좋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사료를 다 먹은 행복이가 인사라도 하듯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또 대문 아래로 사라졌다. 우리는 내일도 행복이가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