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휴가를 갑시다

(3)

by 정서정



다음 날은 비가 와서인지 행복이를 볼 수 없었다. 이제 막 친해지려는 참이었는데, 아쉬웠다. 대신 우리는 가만히 누워 비 오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은 평화로웠다. 그동안 괴로워했던 근심들은 온 데 간 데 없이 반복되는 빗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 오길 잘 했나봐.”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던 내가 희나에게 말했다. 희나는 그 말이 기뻤는지 누워있던 몸을 굴려 모로 누워 팔로 머리를 받쳤다. 역시나 웃는 얼굴이다.



“따라오길 잘 했지? 사실 나도 갑작스럽기는 했는데 출발부터 너무 좋았어. 떠나고 싶었거든. 요즘 좀 아파서 병원만 다니다 보니까 너무 지겨운 거 있지.”



흐음. 그렇구나. 대충 대답을 하다가 무심코 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 사실 아직도 취업 준비 중이야. 근데 너무 겁나는 거 있지. 아무 경력도 없어서 그런지 넣는 서류마다 광탈이고, 어쩌다 겨우 면접까지 가게 되면 떨려서 무슨 말을 하지를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어. 나 취업 공포증 아닐까 하고.”



내 말을 들은 희나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진심 없는 위로의 말보다는 더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몇 번 깜빡이는데 뜬금없이 눈물 한 방울이 불쑥 솟아 귀 옆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 눈물을 훔치며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할 희나 앞에서 눈물 짜며 하소연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랬구나.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일어나 앉은 내 등 뒤에서 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봤던 게 언제더라.



“영서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그거 못하면 죽어서도 후회 할 거야.”



담담한 목소리의 희나는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비슷한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던 것처럼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는 말은 배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너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멋지게.”


“응. 고마워.”



한 번 빙그레 웃은 희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이 촉촉하게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런 희나를 돌아보다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에게 그런 것도 있었던가.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더 작은 물방울로 쪼개지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다.






행복이는 예고 없이 점심 즈음 나타났다. 오늘은 웬일인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벼락에 올라앉아 우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어 방에서 누워 뒹굴거리고 있는 희나에게 보여주었다.



“으. 귀엽다. 근데 알 수가 없네. 거기서 뭐 한대?”


“나도 몰라.”



내가 어깨를 으쓱 하자 희나가 킬킬 웃었다.



“턴테이블 틀면 행복이 도망갈까?”



문득 음악이 듣고 싶은지 희나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행복이를 본 첫 날을 떠올렸다.



“아닐 걸. 첫날에도 노래 들으면서 참치 잘만 먹던데 뭘.”


“그럼 나 그거 틀어줘. 반짝반짝 작은 별.”



희나는 모차르트의 변주곡을 틀어달라고 칭얼대듯 말했다. 여름 이불에도 폭 파묻힌 것이 어이없어서 나는 헛웃음을 픽 웃고 턴테이블을 돌리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이윽고 음악소리가 잔잔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행복이는 이쪽에 잠깐 관심을 두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관심을 끊고 담벼락 위에 웅크리고 앉았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본 ‘식빵굽기’라는 자세 같기도 했다. 나는 또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생각보다 귀여운 생물체 같다.


나는 다시 사료와 물그릇을 준비해 마당 중앙쯤에 내려놓았다. 뒷걸음쳐 집 안으로 돌아가자 관심 없는 척, 이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던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담벼락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마당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사료를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단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는 그런 행복이가 마냥 신기했다. 나는 행복이의 등장 사실을 알리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고희나. 지금 행복이 밥 먹어.”



희나는 어쩐지 대답이 없다.



“희나야. 지금 행복이.......”



말을 걸다 말고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얼른 누워있는 희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희나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예상해본 적 없었던 상황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갑자기 드는 무서운 생각에 희나를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앓는 소리나 뒤척이는 기색도 없었다. 우선 119에 전화부터 해야겠다 싶어 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핸드폰 때문에 마음이 타들어가던 나는 뒤늦게 내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생 처음 눌러보는 119였다.



“일, 일일구죠? 사람이 의식을 잃었어요.”



당황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었다. 119 대원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나의 위치를 물었다. 지도 앱으로 겨우 주소를 찾아 불러주자 15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다시 희나를 살폈다. 이마를 만져보니 축축한 식은땀 아래로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이마가 느껴졌다.


구급대원이 도착한 것은 20분이나 지난 후였다. 축 늘어진 희나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몇 분 전에야 겨우 희나의 핸드폰으로 가족의 번호를 찾았다.



“응, 엄마야.”



희나의 어머니로 짐작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안녕하세요. 희나 친구 안영서라고 하는데, 희나가 지금 열이 펄펄 끓고 정신을 잃어서...”


“희나 할머니 집이죠?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요, 얼른!”



여유롭던 목소리는 온 데 간 데 없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관통했다.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쯤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통화는 끊겨 있었고, 나는 얼른 나와 희나의 핸드폰만 겨우 챙겨서 구급차에 올라탔다.


따분하던 우리의 휴가는 상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희나에게.


안녕. 잘 지내니? 너라면 그 곳에서도 잘 지낼 거라고 믿어. 그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너는 언제나 쨍쨍 빛나는 노란 햇살 같은 애였으니 어쩌면 거기서도 잘 지낼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 때 우리와 함께 했던 행복이는 이제 나와 함께 살아. 내가 요즘 간식을 너무 많이 줬는지 덩치가 많이 커졌어. 너에게도 뱃살을 펼치고 누운 행복이를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많이 아쉽다. 네가 봤으면 귀엽다고 하면서도 많이 웃었을 거야.


그 따분하고 계획 없었던 휴가 이후로 난 많은 것이 달라졌어. 취업은 하지 못했지만 작은 인터넷 상점을 열었고, 또 행복이와도 같이 살게 되었어. 모두 네 덕분이야. 그 날, 네가 샛노란 경차를 타고 우리 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가끔씩은 그런 아찔한 상상을 해보기도 해. 그래서 항상 너에게 고마워. 네 덕분에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하게 되었거든.


인터넷 상점을 연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가. 그동안 소식 전하지 못해서 미안해. 일 하랴, 행복이 돌보랴 좀 바빴거든.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니 좀 어색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일들이 벌어졌어. 꼭 요술 같지?


이상하게도 나는 네가 자주 생각 나. 우리가 친하게 지냈던 건 그 휴가, 겨우 나흘이 전부인데 말야. 우리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우린 더 절친한 사이가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짧기 때문에 강렬하고 다음이 없기에 찬란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네가 자꾸 떠오르는 거겠지? 행복이 밥을 주거나, 길에서 노란색 차를 발견하거나, 스치듯 비슷한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네가 떠오르거든.


고마워.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때 아닌 편지를 쓰는 것도, 네가 자꾸 떠오르는 것도 내가 네게 감사인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이렇게 짧은 인사도 할 수 없을 만큼 네가 기다려주지 않아 처음에는 억울했어. 더 이상 고맙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편지로나마 내 마음을 전한다. 고마워, 희나야.


난 앞으로도 여기에서 열심히 살 거야. 네가 내게 준 두 번째 기회 덕분이야. 나는 행복이를 만났고, 우리는 같이 살고, 또 나는 행복이를 돌봐야 해. 우리는 서로를 돌봐주고 있어.


희나야, 나중에 너를 다시 만나게 되면 꼭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할 거야.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면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멋지게 살아내야 하겠지. 그때 내 인사를 받으면 너는 내게 웃으면서 별 거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어.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내가 직접 감사인사를 전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줘. 행복이와 둘이 잘 살아 볼게. 나중에 행복이가 나보다 먼저 고양이별에 가게 되면 아마 너를 찾아가지 않을까? 그때는 둘이서 같이 나를 기다려 주면 참 좋겠다.


내가 쓸 데 없는 말이 너무 많았지? 편지는 이만 줄일게. 나를 보러 꿈에 한 번 쯤은 찾아와 줘.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은 너무 슬퍼서 자주 볼 수가 없거든. 그럼 거기서도 안녕하길 바라. 고마워, 내 소중한 친구 희나야.


2025. 6. 18.


희나가 그리운 영서 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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