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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로 May 23. 2020

19살, 그리고 29살의 마지막

누구나 겪는(?) 마지막들

우리는 살면서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매년 나이 듦을 겪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년(年)들 중, 누구나에게나 가장 임팩트 있는 시기는 19살과 29살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19살의 경우, 미성년자로서 보호받던 학창 시절을 끝내고 본격적인 성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시기이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때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을 가장 많이 하게들 되는 것 같다. 실상은 당당하게 술집에 갈 수 있게 된 것 빼고는 뭔 차이가 있었겠냐 만은…


반면, 29살의 경우 느낌이 살짝 다르다.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성인으로서의 조건을 한 두 개씩 충족하게 된 시기이며, 대다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젊음의 상징 중 하나로 아끼고 있던 20대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의 두려움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오늘은 나의 19살과 29살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말을 나눠보고자 한다. 필자의 경우는 19살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신비적인 경험을, 29살에는 부질없는 짓을 하곤 했었다. 39살에는 좀 달라야 할 텐데... 씁쓸하지만...


아무튼 글 시작.




19살의 마지막


 수능이 끝났다. 나에게 1년간의 수험생활이 가져다주었던 건 (-)로 변화된 시력, 약간 올라간 성적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이었다. 물론 당시 나의 성적에 비해 목표가 많이 높은 편이긴 하였기에, 목표 미달은 예상된 결과였긴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본인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 스스로를 너무나 참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나의 ‘비(非) 노력’을 억지로 포장하고 또 포장해 ‘재수’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감당할 수 없었던 분노의 에너지를 재수생활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쏟아야 했고, 12월 초 다소 이른 시기에 기숙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열정은 따스했지만, 나의 상황은 끔찍했다. 입소 테스트를 치른 결과, 내 실력으로 갈 수 있는 반은 최하 위반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평소 하던 것의 곱절로 공부를 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더 노력해야만 했다. 이때는 이후 3월에 예정된 정식 반 배치고사에서의 반전을 꿈꾸고 잠, 밥, 공부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시기였다.


 학원에서의 첫 달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크리스마스도 기억에 없고, 연말 분위기 같은 것도 당연히 기억에 없다. 급식에 조금 더 맛있는 게 나왔었나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 정도가 끝인 것 같다. 그리고 12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15~16시간가량의 공부를 마치고 씻기 위해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래도 연말이긴 해서인지, 긴장이 살짝 풀려 친구들끼리의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갔다. 장성한 남자애들인지라 여자 얘기가 주를 이루었고, 주제는 '대학에 가면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대화를 나누면서, 속으로는 엄청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난 여자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고, 평생 혼자 살게 될 것 같아’


 응???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상하게도 이 부분의 본인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명확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와서도 당시에 나 자신이 100%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아마,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졌던 시기였고, 연애 경험이 없었고, 남고 출신이었기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슬픈 목욕을 마치고 개~운한 상태로 그 해 마지막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피곤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지라, 금세 꿀잠에 이를 수 있을… 줄 알았던 그때. 엄청난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꿈속에 나는 미지의 공간에 있었고, 그 공간 속에 한 생물체(여자 사람으로 추정)가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마치 엄청나게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는 슬픔에 흐느끼는 어깨를 가진 그 생물체를 포옹해주었고, 그녀는 고마워하며 본인의 이름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가 알려준 이름은 ‘ID(이드)’였다. (*옷 가슴팍에도 'ID'라고도 써져 있던 것으로 기억)


 그렇게 19살 마지막 꿈은 끝났고, 비로소 20살이 되었다. 일어났을 땐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지만, 특이한 꿈이었던 탓인지 그 내용만은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든 한 가지 당연한 의문.


‘그런데… ID(이드)가 뭐 지?’


 1월 1일, 아침 공부시간에 전자사전(*휴대폰 사용 금지였다)을 통해 알아본 이드의 뜻은 놀라웠다. 이드는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주창한 정신분석 용어 중 하나로서, 본능적 충동에서 유래하는 심적 에너지를 뜻한다. 이해하기 쉽게 두 글자로 줄이면 ‘욕망’ 정도로 칭하면 어느 정도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난 이때까지 프로이트를 공부해본 적이 없었고, 그가 심리학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한 게 그 날이 처음이었다.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은 수능 필수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추리로, 언어영역 비 문학 지문에서 프로이트 관련 내용을 일부 봤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나는 슬프게도 그렇게 지문을 하나하나 기억해낼 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었다.


 이렇게 나의 19살의 마지막은 이 꿈과 함께 기묘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당시에 꾼 꿈 덕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19살 마지막 날 했던 나의 의미 없는 걱정은 불 필요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이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29살의 마지막


 신입사원 딱지는 내 후배에게 넘겨준 지 오래되었고, 경력이 차오르면서 점차 많은 일들이 손에 익어갔다. 이렇게 일은 점점 수월해졌지만, 인생의 목표들은 더욱 낯설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인가,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매일 깨닫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본래 역설로 가득한 법. 일에 대한 성과는 바람빠진 풍선같은 나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이 시기에 가장 뛰어났었다. 사실 노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라준 결과였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회사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갔고, 평온하게 29살의 마지막을 맞이… 하지 못했다!


 20대가 이렇게 끝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고, 이맘때쯤 짜증 나는 일들이 많이 생겼었다. 나는 조금 더 놀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잠은 미국 초등학생처럼 9시부터 오는지, 술안주는 대학생 때보다 훨씬 비싼 걸 먹는데도 주량은 그때보다 싸구려가 되어버렸는지 등. 세월의 흘러감에 대한 억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의 제목처럼 ‘시간, 그놈은 강력했다…’ 시간은 나를 신경도 안 쓰는 듯 거리낌 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이 절대자를 향한 나의 소심한 저항은 단순하고, 효과적이지 않았다. 근데, 대체 무슨 저항을 했었냐고?


   자고 최대한 버티기그래, 놀랍게도 지친 29살 회사원이 취했던 행동이 바로 이것이다.


 조금이나마 20대를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하나였다. 그렇다고 약속을 잡기에는 체력이 부족했기에, 집에서 꾸역꾸역 새벽 1시까지 버티다가 자는 것이 그 해 마지막 2~3달가량의 일상이었다. 그것도 졸려 죽을 것 같은 피곤한 상태로 간신히 버틴 상황이므로, 그 시간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웠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 그때 잠을 죽이기 위해 재밌는 예능을 보거나, 치킨을 시켜 먹거나 하며 시간을 채워나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로소 12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스스로의 20대 마지막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허세라는 도수가 첨가된 와인을 한잔 마시며, 내 방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의 20대는 어떠했던가’


 수 없이 헤매고 수 없이 실패했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20대의 끝에 이르러서도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고, 바라기만 하는 부질없는 짓을 반복하고 있구나. 30대가 되면 조금 나아질까? 아니, 30대의 나에게 맡기지 말고, 지금의 스스로가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조금 더 멋진 어른이 되어보도록 하자…’


 당시의 BGM은 주접 맞지만 적절하게도,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 그렇게, 나의 29살은 조용히 끝나갔고, 그 날 부터는 다행히 평소보다 일찍 잠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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