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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시대.
스마트폰 때문인지 컴퓨터 때문인지
본인이 요청한 결과가 0.01초 이내로 화면에 도출되는 시대
그러한 시대에 파묻힐 때
사람들은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망각하게 된다
온몸을 시체처럼 눕히고 가만히 고정한 채
단지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해도
원하는 음식이 현관까지 배송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온전한 신체를 움직여
느릿하게 목표를 이루는 일을 힘겨워하게 된다.
인터넷을 장악한 대기업들은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경쟁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더욱 신속하고 즉각적인 결말을 원한다
그래서 유튜브는 2배속으로 보아야 한단다
그 말들 듣고 마냥 좋다고 따라해본 나는
이 시대의 다람쥐들이 서로 서로
시간의 쳇바퀴에 올려태워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개가 자기 꼬리잡기 하는 모습을 보면
점점 빠르게 뱅글뱅글 돌다가
결국은 멈춘다
그리고 또다시 도는 개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개도 있다
이놈의 감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첨예해지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이것은 나의 꼬리인가 남의 꼬리인가?'
'나는 왜 갑자기 쳇바퀴를 타고 있는 것인가?'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얼핏
저 앞에 보이는 상점 간판에
50% 세일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은데
막상 앞으로 가서 다시 보면 5%이다
즉, 감각이란
실체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객체의 욕망을 드러내는 심볼같은 것이랄까
언젠가
집 안에서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할 때
왠지 자꾸만 욕실문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잽싸게 거실로 나가보니 초인종은 개뿔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고요했다
기다리던 택배를 받을 것이 있었던 나의 조급함은
없는 초인종 소리도 만들어내는 법이다
나는 이러한 욕망의 원리를 알고 나서
점차 나의 신체감각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것도 나를 속이는 세상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블루투스나 와이파이의 존재는
너무도 신뢰하는 듯하다
정작 그럴 것이라면
눈앞에 아주 잘 보이는
친구, 가족, 애인의 말이나 좀 믿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눈과 귀와 코와 손끝을 믿지 말라
확신하지 말라
단정 짓지 말라
최대한 결정을 유보하고
확인 또 확인
감각의 제국에서는
그 무엇이든 감각을 마비시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