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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물질의 극한에서 세상은 양분된다
직선과 곡선
입자와 파동
규칙과 혼돈
과학과 예술
셀 수 있는 것 과 셀 수 없는 것
그리고
돈이 되는 것과 돈이 안 되는 것
인류가 언제부터 이러한 것을 구분했는지 모르지만
니체 형님은 아마 그리스 신화에서 실마리를 찾았던 것 같다
논리와 빛, 이성과 과학은 아폴론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도취와 광기, 감정과 예술은 디오니스소스로 상징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난데없이 서로 원수가 되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폴론이 승리했다
우리는 성을 쌓을 때 더 이상 모래를 가지고 놀지 않는다
레고블록으로 만들면 끝이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흙 알갱이가 더러 남지도 않고 손이 더러워지지도 않고
또한 서로 음미하고 청승떨 필요도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디오니소스가 죽은 시대이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알바생들도 감정이 섞인 말은 삭제해 버린다
대신 레고부품처럼 짜 맞출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여 배열한다
그리하여 '죄송하다'라는 '감정' 대신
'그건 본사에 물어보세요'라는 '문장'이 선택된다
그러므로
언어는 더 이상 감정의 표현수단이 아니라
감정의 방어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이 입자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판단하면
족히 편하리라고 생각하는데
논리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다 보면
언어의 직선과 입자는 사라지고
감정의 곡선과 파동만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논리를 이루고 있는 분자구조의 한가운데에
감정이라는 원자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것은 영하 273도에서 냉정함을 유지한채
유유자적하게 미소지으면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것을 목격하려면 정말로 차가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논리로 상대하리라
내가 저 상황을 숫자로 증명하리라
마음먹었던 자세 또한
시시콜콜한 대화와
경청이 오가는 일상언어와
의미 없는 수다의 나른하고 지속적인 힘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내려 결국
형체 없는 물렁함으로 넘실거리게 된다
성을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단 레고를 이용하여
열심히 직각의 형상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라
그러면 그것들이 모두 허물어져 내리고 자연 분해되어
결국엔 발가락 사이에 파고드는 진흙처럼
유기체 같은 형상이 되리라
하나의 생명이 양수를 뒤집어쓴 채
자궁을 열고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황홀한 형상
그리고,
하나의 생명이 구더기를 뒤집어쓴 채
흙을 열고 땅 속으로 녹아내리는 기괴한 형상
그것이 알파와 오메가이다
우리는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두 시간 사이에서
열심히 이빨만 마주치려고 노력할 뿐이다
결국
그 아득한 곳에는 레고블록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