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1786년에 발표된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를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1824년 즈음이다. 전제군주제를 반대해 왔던 시인의 작품 제목은 원래 '자유의 송가(Ode "An die Freiheit")'였지만 검열을 피하여 '환희'라는 단어로 바꾸었다고 하니, 그 가사를 음미할 때 시인의 가치관을 떠올려보는 것은 더욱 적절하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 드물게 가사가 덧붙여진 작품으로, 베토벤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압도적인 것으로 유명한 9번 교향곡에 시가 가미되었으니 청취자들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헤드폰을 끼고 4악장을 듣다 보면 갑자기 합창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감정의 폭풍이 밀려온다.
1,2,3 악장을 각각 회고하면서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진행되는 4악장의 도입부는 일종의 연극을 연상시킨다. 다듬고 고치고 정리하는 듯한 초반이 지나가고 이제 4악장의 주제를 결정한 것처럼 보이는 고유의 리듬이 펼쳐지면서 음의 수레바퀴는 그야말로 달려 나간다. 자유와 화합, 젊음과 열정이 한데 뭉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어나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으로 일컫는 곡의 피날레는 이렇게 지적인 사연으로 얽혀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베토벤 관련 영화들이 있지만, 1994년 개봉한 게리 올드먼 주연의 '불멸의 연인(Immotral Beloved)'만큼 예술적으로 만든 작품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합창 교향곡의 사연과 기품이 영화의 동일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결합함으로써 이 두 장르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시너지로 폭발한다. 4악장을 평소 좋아하던 사람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작 시의 아름다운 소재들이 영상미학으로 재탄생하여 고스란히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토벤의 연인 이야기와 어린 시절의 학대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여부를 떠나서 '영화'와 '곡'과 '시'라는 3가지 영역에 걸쳐서 그 주제가 하나로 관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루드비히 베토벤이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자란 영향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새벽 별빛을 바라보면서 차갑고 어두운 강을 향해서 달려가는 어린 생명의 질주와 순수함을 통해서 극대화된다. 아주 얇은 유리장처럼 창백하고 티 없는 물의 표면 위로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가 빛을 발하고, 고통을 끌어안은 주인공은 옷을 벗고 몸을 적신다. 그리고 웅장하고 거대한 음악이 모든 희로애락을 삼켜버리는 듯 청취자들의 감정을 내리누른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별빛과 질주 그리고 화합과 용서가 시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짓누르던 수많은 고통 속에서 탄생시킨 작품을 회한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리 올드먼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청력을 상실한 천재의 귀는 작은 주파수를 감지해 내기 위해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실연의 아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진통이 뛰어난 배우의 짧은 표정을 통해서 한 번에 드러난다.
가끔 나 자신이 작아 보이고 패배의 열등감이 느껴질 때 이 곡을 듣고는 한다. 그러면 그 장엄하고 거대한 소용돌이의 합창보다도 베토벤의 고통과 새벽 달빛을 받으며 차가운 강물로 뛰어들던 어린 소년이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PHMAW3AnM
(아래는 위키백과 참고)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오 벗들이여, 이런 곡조 말고,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i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hum.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이며,
엘리시움의 딸이여.
우리는 그 불에 취해
천상의 여인 그대의 성소에 듭니다.
인습이 엄하게 나눠놓은 이들을
그대의 마법이 다시 묶어 놓으니
그대의 온유한 날개 닿는 곳이면
모든 인간이 형제 되리이다.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eines Freundes Freund zu seyn;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mische seinen Jubel ein!
Ja – wer auch nur e i n e Seele
s e i n nennt auf dem Erdenrund!
Und wer’s nie gekonnt, der steh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동무의 동무가 되었거나,
혹은 사랑스런 아내를 얻었거나
이런 큰 일을 해낸 이라면
우리의 환호성에 합류하라!
그렇다 – 이 지상에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제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이라면 오라!
그러나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는 이는
동맹하지 못하나니 쥐죽은듯 떠나라!
Freude trinken alle Wesen
an den Brüsten der Natur,
Alle Guten, alle Bösen
folgen ihrer Rosenspur.
Küße gab sie u n s und R e b e n ,
einen Freund, geprüft im Tod.
Wollust ward dem Wurm gegeben,
und der Cherub steht vor Gott.
환희를 모든 존재 만물들이
자연의 젖가슴에서 들이키고
선한 자도 악한 자도 모두
환희의 장미 자욱을 따르누나.
환희가 우리에게 입맞춤과 포도주와
죽음도 함께할 동무를 주었으니.
미천한 벌레에게도 쾌락이 주어졌고,
케룹은 신 앞에 서 있노라.
Froh, wie seine Sonnen fliegen,
durch des Himmels prächtgen Plan,
Laufet Brüder eure Bahn,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
천상의 웅장한 벌판을 가로질러
저 태양들이 궤도 따라 날듯이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자신의 길을 따라
달려라, 승리하는 용사처럼 환희롭게.
Seid umschlungen Millionen!
Diesen Kuß der ganzen Welt!
Brüder – überm Sternenzelt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Ihr stürzt nieder, Millionen?
Ahndest du den Schöpfer, Welt?
Such’ ihn überm Sternenzelt,
über Sternen muß er wohnen.
얼싸안으라 만인이여!
이 입맞춤을 온누리에!
형제들아 – 별이 빛나는 천막 너머
자애로운 아버지가 반드시 계시리라.
무릎을 꿇었는가, 만인이여?
세계여, 조물주가 느껴지는가?
별이 빛나는 천막 너머 그분을 찾으라,
별들 너머에 반드시 계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