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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과 세속의 도시

배고프지 않은 그곳

by YJ
포르투갈의 영화를 꿈꾸는 듯한 그랜드 리스보아 카지노 호텔 © Lisay G.

영화 <도둑들>을 보면 원숙미를 뽐내던 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내로라하는 도둑들을 불러 모아 마카오 카지노 호텔에 있는 '태양의 눈물'을 훔칠 계획을 세우는데, 24살의 나이에 80만 원으로 마카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88억 원을 따면서 전설의 '마카오 박'입니다.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스토리가 잘 이해되지 않아 수 십 번 반복해서 보았더니 인물들의 대사를 외울 정도였습니다. 김윤석, 김혜수, 임달화, 김해숙,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 외국어를 배울 때 몰랐던 비속어까지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그리고 동서양이 공존하는 마카오에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2014년 5월 홍콩 출장을 가면서 성공적으로 마카오 2박 3일 스케줄을 뺄 수 있었습니다. 일정이 여의치 않아 셩완 (Sheung Wan) 순탁 센터 (ShunTak Centre)에서 페리로 들어가는 일정을 예약했는데, 출발하는 아침 비가 내리는 탓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한 달 전 세월호 사고가 있던 터라 배를 타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무사히 도착하니 날씨는 개이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일 정도로 걷는 곳마다 유적들과 현대적 건물들이 어우러져있는데 이동거리는 최소로 하면서 의미 있는 볼거리를 즐겼습니다.

마카오 도처에 아파트와 함께 산재한 묘지 풍경 © Lisay G.

요즘에는 매장 (埋藏) 보다 화장 (火葬) 문화가 보편화되었지만, 예로부터 묘지는 음택 (阴宅)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 풍수를 보는 양택 (阳宅)과는 다르게 터를 잡았습니다. 어쩐지 묘지라 하면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나오거나 곡소리가 들릴 것 같아 주거지역 가까이 두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고 보는 기독교적 가치관 때문인지 묘지를 개방하거나 주거지역 근처에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장례식에서 곡성이 난무한다거나 비극으로 흐르는 경우 또한 드뭅니다. 성 도미니크 성당 근처를 걷다가 소나기가 내려서 문이 열린 작은 성당이 보여서 잠시 들어갔는데 깨끗하게 손질된 묘비와 싱싱한 생화가 놓인 무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카지노를 두고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아이러니는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도시에 현대적 카지노와 성당이 함께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니 신기할 뿐이지요.


마카오는 평균 습도가 80%를 웃돌아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힙니다. 땀인지 습기 때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완전 건조가 되지 않아 오염이 심하지 않으면 옷을 세탁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습하고 더운 날씨라 간식이 발달했는데, 현장에서 바로 구워서 파는 달콤한 마카오식 딴타 (egg tart), 에그롤 (eggroll)을 비롯한 다양한 어묵과 육포, 우유 푸딩, 아몬드 쿠키, 돼지갈비를 바게트 사이에 끼워 만든 쥬파빠오 (猪排包)등 보이는 대로 먹다가는 밥 생각은 달아나기 마련이지요.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유럽 문화의 영향으로 해산물 빠에야 같이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가 많고, 포르투갈 수입 와인과 맥주를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반도는 콜로안 (Coloane) & 타이파 (Taipa) 지역으로 나뉘고 중국어와 포르투갈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로 55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자체 화폐 파타카 (MOP)가 있지만 대부분의 상점에서 홍콩달러 (HK$)도 1:1 환율로 동일하게 쓰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마카오 역사 중심지구 © Lisay G.

마카오 역사 중심지구 (The Historic Center of Macau)에 위치한 성 바울 성당은 1580년 지어졌는데, 1835년 화재가 발생하면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리고 파사드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폐허가 되었는도 마카오 최고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반경 3Km 이내에 스물다섯 곳이 넘는 오랜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민트색이나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어서 유럽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유적지가 많아서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문이 열린 성당으로 들어가 숨을 고르면서 다음 스케줄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신시가지에 숙소를 잡아 머물면서 구시가지를 관광했더니 동선이 안성맞춤입니다. 일방통행이 많아 가급적 차를 타지 않고 보도로 이동하였는데, 수족냉증을 일으키는 에어컨을 쐬는 것보다는 무더운 날씨가 생각보다 견딜만했습니다. 저는 여름에도 추위를 타는 편이라 밤에 에어컨을 끄고 잤다가 봉변을 당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벽지와 문에 습기가 맺혀 물방울이 주렁주렁 맺혀있고 이불은 한껏 습기를 머금어 무거웠습니다.

카지노를 품고 있는 호텔의 화려한 장식 © Lisay G.

평생 동안 카지노에 출입할 일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40여 년을 살면서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았던 터라 도박을 할 일은 없었습니다. 외국인이고 성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입장이 가능했지만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불가했습니다. 혹시나 복장 불량으로(?) 쫓겨나갈까 봐 시원하게 파이고 등에 반짝이는 금색 스팽글이 붙은 원피스를 입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보니 한쪽에 술을 다른 한쪽에는 칩을 쌓아두고 게임을 합니다. 내기에 소질도 없고 도박으로 패가망신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기에,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내부를 구경했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음식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도박꾼의 갈증사를 염려하며 여러 가지 음료와 간식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운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사 바우처도 무료로 나눠주었습니다. 엄밀히 무료가 아닌 것이 마카오의 재정 수입 대부분 카지노에 있기에 카지노에 오래 머물면서 돈을 쓰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어색한 눈도장만 찍다 재미가 없어 나왔습니다.

카지노로 들어가는 거대한 향락의 입구 © Lisay G.

작년 마카오 타워 아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마카오의 진면모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2015년 세계 문화유산이 된 지 10주년을 맞이한 마카오 정부는 카지노로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국제 아트페어를 통해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축조된 마카오 타워는 세계 최고로 233m 높이의 번지점프 (bungy jump)가 있고, 스카이워크 (Skywalk X)와 회전 레스토랑 (360 cafe)까지 현대식 시설까지 고루 갖췄습니다. 단오절에 해당하는 용선축제 (Dragon Boat Festival)나 마카오 시의 꽃이기도 한 연꽃 축제 (Macau Lotus Flower Festival)까지 가족단위의 휴양을 위한 건전한 관광 프로그램을 부단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선하다'거나 '나쁘다'라고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옳은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신세계를 보았던 마카오 카지노는 인테리어가 과하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여느 오락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굳이 지옥불에 뛰어들어 뜨거움을 경험할 필요는 없지만 타인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올해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보내며 성스러움과 세속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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