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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 이야기

요트와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by YJ
그리스는 요트 수출국 중 하나이다 © Lisay G.

2007년 당시 그리스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드물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동양인인 저를 보고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지금처럼 한류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기 귀찮아 과묵하게 고개만 좌우로 저었습니다. 아테네 출장 중 자유시간 혼자 파르테논 신전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에도, 중국 단체관광객을 발견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서양인들은 검은 머리칼, 검은 눈의 아시안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과 중국에서 근무한 저를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리스는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로도 유명하고, 1980년대 GDP 세계 1위를 기록한 때가 있습니다. 선조가 물려준 문화유산과 세계를 제패했던 해운업이 그 비결이지요. 1968년 선박왕 오나시스가 전 캐네디 대통령과 사별한 재클린 여사와 재혼해서 유명했지요. 일찍이 유럽연합 (EU)에 가입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던 나라인데 2010년 구제금융을 겪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재건 중이었던 폐허 속의 파르테논 신전 © Lisay G.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재건이 한창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수호신이던 아테나 여신을 모시려고 대리석으로 지어져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천년이 넘게 번영한 고대 그리스문명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파르테논 신전을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56점의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상을 돌려주자는 운동이 일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조각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영국 지식인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죠. 우리도 1965년 한일 문화재 협정으로 천 여점에 달하는 문화재가 반환되었지만, 16만 점이 넘는 문화재가 여전히 산재되어 있고 대다수가 일본에 있습니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파리의 루브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얼핏 위대한 듯 보이지만, 그 전시품의 습득과정이 야만적으로 약탈한 것이라는 진실을 대면할 때면 예술과 문화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어 집니다.

그리스의 대표 3개 섬을 방문하는 투어 중 © Lisay G.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전쟁 속에 피어나는 커플의 전우애와 사랑을 담았는데, 그 촬영지가 그리스 자킨토스입니다. 이곳은 관광 산업이 발달하였고 나바지오 해변이 유명합니다. 당시 선남선녀 배우들보다 이국적인 배경에 설레면서 드라마를 봤었는데 역시 그리스더군요. 2007년 당시 직항이 없어 경유를 해서 가느라 쉽지 않았습니다. 밀라노를 경유하는 이탈리아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의자가 통째로 떨어져서 승무원을 호출했습니다. 스튜어디스가 오시더니 기내 마음에 드는 빈자리에 아무 데나 앉으라고 쿨하게 말하는데 둘이 얼마나 깔깔 웃었던지요... 그리스는 6천 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200여 개의 섬을 제외하고 대부분 무인도나 암초입니다. 그중 가장 큰 섬이 에게해 남쪽 크레타섬입니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 비현실적인 바다와 눈처럼 하얀 기암절벽의 자연을 마주하면서 복 받은 나라라고 내심 부러웠지 말입니다.

그림 같은 에메랄드빛 바다 © Lisay G

당시 주중 그리스 대사관 인턴으로 근무하던 26세 청년이 통역 차 출장에 수행했습니다. 해외 대사관에 근무할 정도이니 8개 국어를 한다거나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굳이 부언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그리스 조각이라고 그를 부르더군요. 저와 베이징에서 함께 출발해 아테네로 가면서 몇 가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남자들은 가부장적으로 한국 기성세대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녀석이 뜬금없이 제 나이를 묻는 것입니다.

'어디 무례하게 여자 나이를 물어?'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나이를 실토하고 있었습니다. 입맛이 없어 기내식을 남기자 전 장관님께 이르겠다고 농을 부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말이지요. 누가 외교관 아니랄까 봐...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오버헤드빈 (overhead bin)에서 가방을 내리는데 우리 집 열쇠가 빠져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열쇠를 주워 건네며 던지는 말,


Is this the key to heaven? (이것이 천국으로 가는 열쇠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멘트에 아찔해서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우리는 아테네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예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정치와 처세술에 뛰어난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있을지 궁금하네요.

야외 카페에 앉아서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 © Lisay G.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It's all greek to me!)"라는 표현도 있듯 그리스어는 매우 난해합니다. 국제교류 전시 차 그리스를 방문한 첫인상은 좋았습니다. 대사관의 소개로 전 장관님의 댁에 일주일을 머물렀지만, 그리스어는 유추하거나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전 장관님 조카가 아테네 국립대학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사람에 넋을 잃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 매일 먹던 '지중해식 식사'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샐러드나 튀김에도 올리브 오일이 흥건한데 여기에 레몬즙이나 요구르트를 무심하게 뿌려 먹는 것이 핵심입니다. 처음에는 황금색 기름이 넘실거려 거부감이 들었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트리트먼트나 에센스를 쓰지 않아도 머릿결과 피부에 윤기가 좔좔 흐르고 아토피가 사라지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지중해 식단은 '약이 되는 음식 (food as a medicine)'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저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그릭 요거트를 즐기고 있습니다. 감람나무 (olive tree)가 지천에 있어 올리브 오일을 약으로 여긴다니, 건강을 생각한다면 가까이 두라 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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