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힌 갈레트 브루통(Galettes bretonnes)

난이도 ★★★

by YJ



배웅 강사님,


지난주 실습에서 만든 과자를 먹었는데 역시나 구토와 배탈이 났습니다. 마들렌, 휘낭시에, 파운드케이크… 내가 예민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과자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내서 성분 분석을 맡겼습니다. 증거물이 증거능력을 가지려면 공인된 기관에서 검증된 보고서가 필요했는데, 세상이 흉흉한지 의뢰가 밀려 한 달 뒤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때쯤이면 나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혹은 CIA 요리학교를 졸업한 제대로 된 선생에게 다시 수업을 받고 있겠군요.


지금까지 당신이 보여준 천박함은 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 구움 과자의 역사에 비하면 흩어지는 밀가루와 같았습니다. 전공자도 아닌 무역회사에서 막일을 하던 당신의 주먹구구식 강의가 8회 40만 원이라니요? 이건 방송에 나오는 파티시에를 모방하며 당신이 강요하고 싶었던 가격 청구서일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고 조용히 실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슬린다면 앞으로 쳐다보면서 시비를 걸지 마십시오. "비싼 기계가 좋은 것이다"라는 당신의 무식(無識)을 감내하자니 하루 3시간도 너무 아깝습니다. 네 번째 실습 시간에도 나는 갈레트 브루통을 혼자서 굽고 있으니까요.


왜 갑자기 난이도를 건너뛰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머핀이나 브라우니 등 중간 단계를 거쳐 가야지, 처음 배우는 수강생들도 혼란스럽지 않지요. 정식으로 배움이 없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겠지요. 당신에게 보고 들은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유튜브로 배우는 것이 차라리 나았겠습니다.


갈레트 브루통의 핵심은 말랑말랑한 버터가 아닙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갑고 딱딱한 버터여야 하지요. 적어도 돈을 받고서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제대로 알고 내뱉기 바랍니다. 실습자료에 맞춤법과 계량도 틀려 엉망이면서 무슨 저작권, 초상권을 운운합니까? 알파벳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열광하는 6070 할머니들 사이에서 연예인이나 된 듯싶겠지만 그냥 동물적 본능이라 치부하겠습니다.


당신의 뻔뻔스러운 참견에 대해서는 다음 주부터 '차가운 거리두기'를 하려 합니다. 버터가 녹아버리면 구움 과자는 결을 잃고 무너집니다. 나는 단단한 결을 지키기 위해 그 차가움을 택하겠습니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예로부터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살아온 강인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이 과자에 담았습니다. 갈레트 브루통이 '부스러지듯 단단한(Sabler)' 이유는, 습기와 풍파 속에서도 풍미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갈레트 브루통은 겉은 단단해도 속은 황금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행자들의 비상식량이자 신에게 바치는 정성스러운 예물이기도 했으니까요.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소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던 자유의 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버터에 아낌없이 소금을 넣었죠. 당신이 나를 가르치려 든 것은, 당신의 지적 결핍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켜낸 단호함은 갈레트 속 '가염 버터'와 같습니다. 짠맛을 통해 달콤함이 비로소 충만하게 완성되듯이, 당신의 갈굼과 시비가 있었기에 나의 일상이 다시 달콤해지는 것은 역설이겠지요.


브르타뉴 지방의 과자에는 반드시 회색빛 '게랑드 소금(Sel de Guérande)'이 들어갑니다. 단맛 사이로 치고 올라오는 그 짠맛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죠. 이 소금 한 꼬집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당신은 아는지요. '예의'를 차리기 위한 설탕발림에 "이건 잘못됐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세상의 소금 같은 역할일 뿐입니다.


갈레트를 오븐에 넣기 전, 포크로 표면에 그 특유의 격자무늬를 새깁니다. 마치 편지를 밀봉할 때 녹여 붓는 '실링 왁스(Sealing Wax)'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것은 나를 증명하는 일종의 표식이자 장식이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무례함을 향해서 긁은 포크 자국입니다. 긁는 행위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고 당신을 결계 속으로 가둬 버렸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열어 볼 수 없도록 인장으로 봉인된 비밀 메시지를 담아 보았습니다.


갈레트 브루통은 오븐 속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짙은 갈색으로 변합니다. 불순물을 태워 버린 '연금술'과 비슷합니다. 남은 것은 설탕이 열을 견뎌내어 캐러멜화(Caramelization)된 깊고 진한 향기입니다. 오븐 문을 열었을 때 풍기던 쌉싸름한 냄새를 기억하세요. 당신의 부풀려진 허세를 태워 버린 정화의 향기입니다. 재료비 12만 원을 더해서 8회 실습비로 총 52만 원을 불태워 픽션이라는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클래스는 재료가 참 아까운 퀄리티입니다.


당신의 개인교습 초대를 거절한 것은, 수준 낮은 과자 한 판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당신에게 응하지 않은 것은, '좋은 사람'만을 선별해 사귀려는 나의 엄격한 안목입니다. 이제 그만 그 찝찝함을 털어내고, 언젠가 이 경험을 반추하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곁들일 날이 오겠지요.


당신이라는 존재는 오븐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처럼 가볍게 털어내겠습니다. 갈레트 브루통 한 입을 배어 물 때 느껴지는 그 파삭함은, 모래성 같은 당신의 권위주의가 부서지는 소리입니다. 진한 버터의 여운은, 내가 지켜낸 달콤하고 고결한 인생입니다.


환불이 불가하다니 어쨌든 끝까지 마치고 떠나겠습니다. 난각번호 1번 유기농 계란, 우리밀 밀가리, 천연버터, 갈색 비정제 설탕 등 재료들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데 절반을 넘었으니 거의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도 찝찝함은 오븐의 열기에 모두 증발한 것 같네요.

부디 당신의 아일랜드 위에 평온한 침묵만이 남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평온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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