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의 비자가 거의 끝나갈 무렵, 비자 연장이 어렵다는 회사의 답변에 나는 서둘러 가능한 다른 국가의 워킹 홀리데이를 알아보고 있었다. 내가 워킹 홀리데이 국가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던 것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가, 내가 영어로만 일을 하는데도 문제가 없는가였다.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더라면 그냥 내가 가고 싶었던 국가에 가서 한량처럼 1년을 보내다 오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나는 생활비를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기에 일을 구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굉장히 중요했기에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지의 유무는 제일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언어를 일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배우는 건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던 2010년의 캐나다 때와는 다르게 2018년에는 수십 개의 국가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수 있었기에 선택지는 굉장히 많았다. 당장 내가 살고 있었던 네덜란드부터 주변 국가들인 벨기에,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거의 웬만한 EU 국가들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주 갔던 국가는 독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워킹 홀리데이 국가로서는 영 끌리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독일어를 배우지 않으면 일을 구하기 조차 굉장히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다음 워킹 홀리데이 목적지로는 맞지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좁혀진 두 국가는 바로 덴마크와 스웨덴이었다. 이 두 국가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고 알려진 유명한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어떨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당시만 30세를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둘 중 한 국가만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스로에게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함께 일하던 덴마크 동료가 나에게 수도인 코펜하겐에 가면 지방 도시들보다 영어 쓰는 인구도 많고 일 구하기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어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있는지 열심히 서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두 국가 다 만만치 않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싼 물가와 적은 한국인,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 국가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 간 사람들 모두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나는 불굴의 의지로 열심히 서치를 하였고, 결국 인터넷에서 조금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덴마크를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두 나라 다 북유럽 국가, 겨울이 춥고,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것은 공통적인 이미지였지만 덴마크는 뭐랄까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hygge문화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나는 만 30세가 지나기 전에 후다닥 비자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덴마크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9개월뿐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한 줌 경력과 영어뿐인데 과연 덴마크어 없이 일을 구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일은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고, 일을 바로 구한다고 쳐도 9개월밖에 못하니 비싼 물가를 상대해가며 1년을 채울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만 30세가 되기 딱 하루 전날 눈 딱 감고 스웨덴 비자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막상 비자 신청을 해놓긴 했지만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이때 나에게 스웨덴은 덴마크와 다르게 회색의 차가운 이미지였다. 몇몇 스웨덴 워킹 홀리데이 혹은 학생 비자로 스웨덴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는 한결같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지도 않던 그 후기를 읽으면서 점점 나에게 스웨덴의 이미지는 차가운 나라가 되어갔다.
스웨덴 비자를 신청하고 나는 한 달 뒤 덴마크로 떠나 덴마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덴마크는 비자받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스웨덴도 그렇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3월, 4월, 5월이 지나도 스웨덴에서는 그 어떤 연락조차 오지가 않았다. 나는 너무 만 30세 생일에 임박해서 비자를 신청해서 혹시 리젝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덴마크에서는 운이 좋게도 바로 일을 구해서 나름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었긴 했지만 역시나 워크 퍼밋으로의 전환은 어려웠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연락이 없다면 한국에 가야 했기에 앞날이 그저 캄캄하기만 했다. 그렇게 6월이 되었고 드디어 스웨덴 이민청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케이스 담당자가 배정이 된 것이었다. 나의 케이스 담당자는 나에게 bank statement를 다시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네덜란드에서 제출했던 네덜란드 통장의 bank statement는 내 이름이 이니셜로 쓰여 있었는데, 여권에는 풀네임으로 쓰여있으니 다른 이름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풀네임으로 쓰인 증명서를 다시 보내라는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원래 은행에서 first name이 이니셜로 쓰인다고, 그게 내가 맞다고 증명할 수 있다고 메일을 보냈지만 담당자의 대답은 새로 bank statement를 보내라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나는 귀찮지만 은행에 들러 나의 풀네임이 쓰인 bank statement를 제출했고 약 열흘 후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로써 만 30세 직전에만 신청해도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무사히 덴마크에서의 9개월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비자 시작일보다 조금 이른 12월 중순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