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학교 방역기 (14)
1학년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터뜨리지 못했던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며 복도와 교실을 휘젓고 다녔고, 그런 아이를 잡아 이야기하면 어떤 아이는 실실 웃으며 딴짓을 해 지도 선생님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방역, 수업, 생활 지도에 매일매일 전쟁 중이다.
2학년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급식 지도를 하러 가는데, 한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학생부장님도 들으셨죠?”
“뭐 말씀이세요?”
“어제 우리 1학년 아이들 몇이 몰래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중 2학년 아이들이랑 포옹을 하고...”
“○○중은 실시간 수업을 안 하나 보네요.”
“일주일에 한 번만 하는 것 같아요. 1학년 아이들이 학교 무서운 걸 모르는 것 같아요. 학교를 함부로 나가는 것도 그렇고 공개된 장소에서 포옹하는 것도 그렇고... 애들이 개념이 없어요.”
“그렇긴 한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그 ‘개념’이라는 걸 배운 적이 없잖아요. 중학교 입학해서 학교의 교칙과 생활 그리고 중학생으로서 바람직한 행동 같은 것에 대해 배우지 못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나저나 걔들 어떻게 하죠?”
“전 아이들이 상식이 없는 게 아니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불러서 나무라기보다는 차근차근 알려주면 될 거 같아요.”
“글쎄요...”
“그리고 그 ‘개념, 상식’이라는 것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게 변하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개념과 상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가요...?”
선생님의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침묵은 내 말에 대한 명확한 부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주된 이유가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굳이 코로나 19의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하지 않고 유명한 강사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영상을 보면 될 것이다.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많다. 그런 면에서 난 경쟁력이 없는 교사 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이들이 사람 사는 법,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개념과 상식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 개념과 상식을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을 통해 배운다. 이건 유명 강사보다 내가 더 잘한다. 그런 면에서 난 경쟁력 있는 교사다.
나만의 착각에 빠져 있는데 ○○중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인근 학교 2학년 학생들이 오후 4시에 학교 앞 아파트 정자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 것을 잡았는데 우리 학교 아이 한 명도 있다는 거였다. 몰래 숨어서 핀 것도 아니고 대낮에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폈다니... 뭐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후배 교사에게 아이들이 몰라서 그렇다고... 우리가 조금 더 열심히 가르치자고 했는데... 이 아이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동안의 현타(현실 자각 타임) 후, 내 ‘개념과 상식’을 들이대 아이를 판단해 비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인내가 우선이구나 싶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다 녹초가 되어 집에 가지만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코로나 19가 아무리 난리여도 언젠가 우리는 이를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교육 활동으로 특히 인성 지도를 제대로 못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예전보다 더 똘똘한 아이들이 그 지식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걱정스럽다. 솔직히 난 아이들이 그렇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지식을 담는 인성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 지식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해하는 데 사용되는 흉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아이를 위해 우리의 인내가 훨씬 더 필요한 시기인 것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