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으로 포장된 무지막지한 성폭력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내 학창 시절의 즐거움은 학교에서보다 하교 시간에 많이 일어났다. 하굣길을 함께 하며 각자의 집으로 빠지기 전까지 우린 별별 짓을 다 했다. 때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며 우린 더 친해졌고 학교생활은 더 즐거웠다.
그 즐겁던 하굣길 말도 안 되는 짓 중 하나가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을 예쁘면 사과, 못생겼으면 호박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린 이런 거친 이분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의 품종별 가격 따라 예쁜 아이들을 ‘부사-홍옥-국광’ 사과로 나누었고 못생긴 아이는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더 나누지 않고 그냥 모두 ‘호박’이라 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평가한 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평가한 아이를 보는 눈이 없다고 놀렸다. 때론 잘 알지도 모르는 황색 언어를 써가며 낄낄대기도 했다. 그런 우리를 쳐다보고 가는 여자아이들의 반응은 우리를 더 재밌게 만들기도 했었다.
여자아이들의 얼굴 평가가 시시해지자 우린들 중 누군가 ‘사과’ 그중에서도 최고인 ‘부사’와 말 걸 수 있다고 했고 우린 해보라고 하지도 못하면서 저런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곧 그 녀석이 자신의 말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우린 그 녀석이 우리와 같이 숨어서 킬킬거리는 좀생원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놈은 기고만장했다. 우린 그놈을 모두 부러워했다. 특히 난 그놈을 보며 소심한 성격 탓에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더 대단한 놈이 되려면 더 센 것을 해야 했다. 우리 중 나처럼 별 존재감이 없던 한 아이가 갑자기 여자아이 쪽으로 가더니 여자아이의 뺨을 때리고 왔다. 정말 건들고 온 것이 아니라 때리고 왔다. 난데없이 맞은 여자애는 멍하니 있더니 자리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우린 뭔 상황인지 몰라 머뭇거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냅다 뛰었다. 그리고 때린 놈을 부둥켜안고 그 용맹함을 칭찬하고 맞은 여자아이의 얼굴과 맞을 때의 표정을 조롱하기에 바빴다.
이미 늦었지만 거기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폭력적이었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나쁜 일이니 하지 말자고 말하는 아이는 없었다. 여자아이들의 용모를 평가하고 치마를 들추고 때리고 도망 다니는 우리들의 폭주는 담임 선생님이 종례 때 옆 학교 아이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있다는 데 그러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는 말씀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가 폭주를 멈춘 것은 우리 행동의 잘못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엄포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선생님이 말할 때쯤 우리는 그 장난에 흥미를 잃고 있었고, 더욱이 맞는 공포를 무시하고 놀 만큼 소중한 장난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자가 장난감도 아니고 서로 존중해야 할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가서 내 옆에 나와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두 배나 많았던 사범대학의 특성상 여학생들과 부딪힐 일이 많았고 그들과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또 점차 그렇게 했을 때 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야 난 내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장난에 희생되었던 그 여학생에게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그 여학생들을 만난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요즘 “벌레 같은 한국 남자, 속물 한국 여자” 등 남녀를 서로 비하하는 말을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본다. 그리고는 장난이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억울한 표정들이다. 또 상대방이 먼저 그래서 그랬다고 한다. 그중 몇몇은 남자의, 여자의 문제점과 사회의 불평등함을 나에게 고발하고 선생님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막막할 정도로 답답하기도 하다. 또 교무실만 나가면 다시 서로를 비하하면서 낄낄대고, 욕을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상대방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행동과 사고방식들이 유튜브,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조직화 되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또 그런 것이 너무 쉽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이 아닌지, 또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모방 학습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예전의 나처럼 너무 늦게 자연적으로 깨닫기를 기다리기에는 지금 남녀 성 갈등은 너무 심각하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그래서 상대방이 없으면 나 역시 불완전하고 행복할 수 없음을 학교와 사회에서는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농담하고 비하하는 행동들은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게 하고 그것은 또 상대의 문제점만을 찾게 하여 잘못된 사고를 더 강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결과를 가져올 뿐임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성 인식을 갖도록 학교와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해결책 모색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