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으로 포장된 똥고집에 학교에서 멀어지는 학생들
1983년부터 실시한 교복 자율화 정책에 따라 교복을 입지 않게 된 나는 드디어 그 지겨운 까만 교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철마다 옷을 사대야 하는 부모님 입장에선 교복 자율화는 미친 짓이 분명했다. 부모님은 학생이 학생답게 입고 공부만 잘하면 되지 옷에 왜 신경 쓰냐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부모님이 교복 자율화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자유롭게 사복을 입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본 데에는 가정 형편과 꾸미기에 무관심했던 성격 탓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의 사정에 관심 없던 우린 메이커 옷과 신발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을 가진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난 옷이란 그저 입으면 되는 것이라는 내 생각도 메이커 옷을 입은 아이를 무신경하게 봤고, 설령 그들이 부럽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질 집안 형편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창 꾸미기에 관심 있는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의 고민은 컸을 것 같다. 매일 버스 속에서 보던 그저 그런 아이가 옷 하나로 정말 다르게 보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복 자율화의 취지와 함께 한 묶음으로 들어야만 했던 말은 우리 학교가 교복 자율화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는 이유와 학교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에 관한 말이었다. 우리 학교는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가진 학교다. 이런 학교가 정부 시책에 맞게 교복과 두발의 자율화에 앞장서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너희들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그 빛나는 전통에 어긋나지 않도록 스스로 잘 입어야 한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런 좋은 학교의 일원이 된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으며 절대 학교의 명예에 똥칠이 되는 행동은 해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을 수업 시간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하는 통에 1학기가 가기도 전에 우린 선생님들의 다음 말을 외울 정도가 되었으며 더 이상 고장 난 레코드에서 나오는 말에 어떠한 감흥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우린 다시 교복을 입어야 했다. 정부에서 사복을 입고 청소년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학부모들이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였고, 잘 입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빈부 격차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교복을 학교장 자율로 입을 수 있도록 하자 이번에도 우리 학교는 그 어떤 학교보다도 빠르게 교복을 부활시킨 것이다. 우리 중 머리가 굵은 아이들 몇몇이 처음 시작할 때 그러한 문제를 예상 못 한 것이냐고, 뭔 정책이 3년도 못가냐고 대놓고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선생님들은 조용히 하라며 상대해 주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하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따르던 엄마도 교복을 다시 입으라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듣기 민망할 정도로 학교 욕을 하셨다. 맞춰 봤자 1년도 못 입는 고3까지 교복을 입으라는 것은 이유야 어쨌든 낭비라는 거였다. 그뿐이었다. 감히 학교에 항의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학교는 파출소만큼이나 어려운 곳이었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뭐라고 하든 3월 2일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라고 했고, 늘 그렇듯 우린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교복을 맞추고 입었다. 우린 중학교 때 입었던 전국 공통의 까만색 교복이 아닌 것과 나름 양복 느낌이 나는 교복에 만족했고 서로 자기가 교복에 잘 어울린다고 시시덕거리기 바빴다.
선생이 된 지금 솔직히 난 교복이 좋은지 사복이 좋은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 교복은 교복 나름대로, 사복은 사복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결정 과정이 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면 한다. 미리 정해 놓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정하면 정하는 대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행태는 없었으면 한다.
물론 선생이 돼서 그 당시 선생님들 역시 정부에서 하라면 자기 생각과 상관없이 할 수밖에 없는 약자라는 것도 알았다. 그 순간 소신에 따라 행동하시는 분들이라는 선생님들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선생님들이 왜 그랬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그 시대가 강압적인 정권이 제시하는 기준에 순종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시대였고, 그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결코 비겁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그리 오래된 학교도 아니고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고등학교도 아니다. 그래서 선배들의 빛나는 전통 뭐 이런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학생들에게 기준을 정해 놓고 따르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기준이라는 것도 학생들이 입학하기 훨씬 전에 만든 도저히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인데도 학생들에게 지키기를 강요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지금은 예전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민주적인 시대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일부 선생님들은 좋은 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고장 난 레코드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나 하나만이라도 고장 난 레코드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 말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지만 그런 나의 행동이 학교 조직원으로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선생님들의 똥고집에 학생들은 점점 학교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