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 코스

책상에 앉아 금을 긋는 사람들

by 이동수

중학교에 진학할 때 동네 친구 한 명 없는 중학교에 배정되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고등학교만은 제발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은 곳에 배정되기를 바랐다. 반에서 2/3가 조금 안 되게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그중 대부분이 그 근처에 있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나 역시 당연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배정통지서를 나눠주시는 선생님께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고등학교에 배정통지서를 주셨다. 내가 받아들고 멍하니 있으니 서울 4대 명문고라고 좋은 학교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말고 우리 학교 누가 가요?”라고 물었지만, 선생님은 “몰라!”하고 나가버리셨다. 우리 학교에서 ○○고등학교에 배정된 것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참 힘들었다. 고민하다 114에 전화를 해서 ○○고등학교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고등학교에 전화해서 위치를 물어본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에서 ○○○번 버스가 ○○고등학교까지 갔다. ○○○번 버스를 타려면 나는 집에서 한참을 떨어진 정류장까지 20분 정도는 걸어야 했다. 그리고 버스를 50분 이상 타고 내려서 또 1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에 학교가 있었다.


며칠 후 선생님으로부터 배정 원칙이라는 것을 들었다.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서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는 학교를 통학 가능 학교로 보고 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원칙이 실제 가보고 결정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내 생각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버스 노선도와 학교 위치도를 보고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기나긴 겨울방학을 새 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 친구와 떨어지는 것만 걱정했던, 나의 재수 없음을 끊임없이 투덜대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가끔 예전의 나처럼 친구 따라,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학교를 선택하려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특목고, 자사고, 일반계, 특성화고 등의 학교 중 어느 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길이 다르게 그려지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순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 선생님처럼 ‘몰라’하지 않고 선택의 무거움, 선택의 제1 기준으로 자신의 꿈과 미래, 그리고 내가 진출해야 할 우리나라의 현실 등을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에게 먹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기성세대가 마음대로 그린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 어찌 보면 기성세대의 갑질이 아닐까? 겨우 16살밖에 안 된, 그리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 꿈에 대해 잘 모르는, 선택의 경험도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우린 너무 중요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유 학년제, 진학상담교사, 학교장허가체험학습, 각종 단체 주최 학생 참여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 등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지, 대부분 아이에게 충분히 접근 가능한지는 회의적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대부분이 부모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교육적 환경이 부족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제도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을 맛보고 그에 따라 네가 갈 길을 정하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아이들은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외고, 자사고의 학생 우선 선발을 2025년에 일괄 폐지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 역시 외고, 자사고 등의 우선 선발 폐지에 관심이 많다. 대체로 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실현 가능성에서는 회의적인 선생님들이 많은 것 같다. 설령 폐지된다고 해도 아마 강남 8학군 같은 곳에 아이들이 몰릴 것이고 결국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실 붕괴와 고교 서열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난 이런 논의들을 보다 보면 선택을 하는 아이들 입장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아이들에게 그리 많지 않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고 우리는 너희들을 위해 할 건 다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의 선택에 따라 너무도 다른 길이 주어지는 현실 그리고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 간의 전학 제도가 일부 성적 좋은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번 기회에 특목고, 자사고 학생 우선 선발 폐지와 학생들의 바람직한 선택을 위한 환경 제공, 그리고 실질적인 재선택 기회 보장 등도 함께 논의되고 이루어져서 수많은 아이를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일이 더 일어나지 않기를, 아니 조금이라도 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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