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장면 그러나 매일 다른 날
온 가족이 출동한 입학식을 하기 위해 어렵게 도착한 학교는 고풍 창연했다. 돌로 지은 건물과 잘 자란 잔디밭, 그리고 멋있는 동상, 3·1운동, 6·10만세 운동 기념비, 넓은 운동장, 야구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 겨울방학 동안 가졌던 학교에 대한 불만은 금방 자랑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왜 서울 4대 명문고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님 역시 이런 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같이 다닐 친구가 없어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부모님도 내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친구를 못 사귈까 봐 걱정하셨지만, 난 금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같이 놀았다. 중학교 때 있었던 한 반에 꼭 한두 명씩 있던 공부를 포기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없어 분위기도 좋았다.
학교 오기 전 가장 걱정했던 버스 등하교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러나 등교 시간인 7시 30분에 맞춰 등교하려면 집에서 6시에는 나와서 버스 정류장까지 20분간 걸어가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더욱이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대라도 놓치면 낭패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타는 곳이 버스 종점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어서 앉아서 갈 수는 없었지만 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타고 몇 정거장 지나면 학생들은 안내양 누나가 장롱에 이불 밀어 넣듯 쑤셔 넣어졌고, 기사 아저씨의 다분히 고의적인 버스 흔들기로 정말 빈틈없이 버스에 꽉꽉 채워졌다. 그렇게 숨도 못 쉬고 포개져 30분 정도를 달리면 3개나 되는 여학교의 학생들이 또 각종 곡예 끝에 승차했다. 꽤 많은 여학생이 그 빈틈 없는 버스를 탄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우린 여학생들과의 신체적 접촉을 아슬아슬 피하며 또 즐겼다. 이 즐거움은 등굣길이 주는 모든 괴로움을 대체하고도 남았다. 여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와 안내양 누나의 괴성과 버스의 쿨럭거림으로 우리의 등굣길은 언제나 신났다.
힘들게, 아니 신나게 타던 버스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밀려 내리면 학교까지 10분 이상 걸어야 했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었기 때문에 도로에서 학교까지는 걸어 올라가야 했다. 꽤 가파른 길이었지만 우린 서로를 만난 기쁨에 힘든지도 모르고 올랐다. 어젯밤에 헤어지고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린 몇십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우린 끝없이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로 선생님들 험담 아니면 버스 타고 오면서 만났던 여학생에 대한 품평이었던 것 같다. 매일 같은 길을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 새로웠고 즐거웠다.
죽어라. 공부만 하기를 강요받아 점점 더 일찍 그리고 더 늦게 이 길을 오르고 내리던 고3 때도 우리의 즐거움은 줄지 않았다. 어쩌면 이 등교 버스와 이 등굣길이 내 무미건조한 사춘기를 지탱해 준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 어떤 즐거움으로 다닐까? 선생님들은 배움의 즐거움이라고 하는데...아닌 것 같다. 어떤 이유든 즐겁게 왔으면 한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그 이유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