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다. 그것에 맞게 고풍 창연한 건물과 잘 가꾸어진 조경이 멋지다. 입학식에서 처음 본 학교 건물과 나무들은 그 자체로 나와 우리 가족들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멋진 나무와 동상과 기념비가 멋있고 자랑스럽다는 내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거의 매주 부동자세로 동상으로 세워진 인물의 훌륭함과 위대함을 교장 선생님 포함해 여러 선생님에게 교육받았다. 그래서 교육이 계속되면 될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그 동상 속 주인공을 싫어했다.
어느 날 점심을 후다닥 먹고, 사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이미 거의 다 먹어서 먹을 게 없기도 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한자가 가득해 어차피 읽지도 못할 기념비를 읽겠다고 기념비가 있는 잔디밭에 들어갔다. 분명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 팻말을 봤지만 뭐 어떠냐 싶었다. 하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경비 아저씨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고 우린 무조건 도망쳤다. 우린 건물 뒤에 숨어서 읽지도 못하게 하는 기념비를 왜 세웠냐고 투덜댔다.
며칠 후 하굣길에 아저씨에게 한 아이가 혼나고 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붙잡힌 아이를 멍청 난 놈이라고 비웃고 그놈이 혼나는 것을 일부러 지켜봤다. 우리의 상대적 지혜로움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또 우리가 며칠 전 잡혔으면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그 나무가 얼만지 아느냐고, 너 팔아도 못 산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말 것이지 못돼먹은 새끼들이 꼭 하지 말라는 건 더 한다는 둥 듣기 민망한 쌍욕을 해대셨다. 도대체 나무 하나가 얼마나 비싸길래 사람을 팔아도 못 사나 했는데 그 녀석이 얼만데요 했다. 도대체 얼만데 이 난리냐, 잔디에 들어가고 나무 좀 건들었다고 이렇게 수많은 아이가 지나가는 하굣길에서 나에게 이런 개망신을 주느냐는 항변이었던 것 같다. 아저씨는 가소롭다는 듯이 “널 팔아도 못 사.”라는 말을 한 번 더 하셨고 이 가엾은 열혈(?) 청소년은 “도대체 얼만데요? 얼마냐고요?”하고 반항적으로 따졌다.
“삼천만 원!”
아저씨의 대답과 아이의 욕이 거의 동시에 나온 것 같다. 그 소나무가 30년 전에 진짜 삼천만 원이었는지 아저씨의 과장이었는지는 난 아직도 모르겠다. 단지 삼천만 원이라는 돈은 길길이 날뛰는 아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돈이었고 ‘널 팔아도 못 산다.’ 말에 금방 수긍하게 만든 건 분명했다. 아이가 내뱉은 욕은 삼천만 원에 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자신에게 내뱉은 욕이었다. 삼천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풀이 죽은 아이는 기세가 오른 아저씨의 더 심한 욕에도 아무 반항을 하지 않았고 상대의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어진 아저씨는 한 번만 더 걸리면 그땐 가만두지 않겠고, 부모님 불러 나뭇값을 물어내게 하겠다는 협박을 남기고 경비실로 들어갔다. 물론 구경꾼인 우리에게 너희들도 나무 건들면 가만히 안 둔다는 엄포는 잊지 않았다.
우리의 관심은 삼천만 원의 진실이었다. 맞다 느니, 거짓말이라느니. 우리끼리 핏대올려 싸워봤자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린 한참 동안 핏대를 올려가며 싸웠다. 의미 없는 싸움이었지만 우리 모두 삼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돈에 눌려 절대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졸업할 때쯤 그 생각은 오천만 원으로 뻥튀겨져 후배들에게 전해졌다.
그 당시 우리는 교실에서 국민윤리, 사회 시간 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열심히 배우고 외웠지만, 교실 바로 밖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우리보다 귀한 나무가 있었다. 당시 나와 내 친구 누구도 불행히도 인간의 가치는 돈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엄청난 귀한 것임을 책이 아닌 생활 속에서 체험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 사람보다 더 귀한 나무가 있다고 한다면 대부분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귀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10억 줄게 대신 10년 동안 감옥 갈 사람 하면 꽤 많은 아이가 손을 든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학 나와서 열심히 일해도 10억 못 번다, 10년 회사 다닌다 생각하고 감옥 갔다 오면 된다.”라고 한다. 액수만 달라졌지 돈을 더 귀하게 보는 생각은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하다.
세월호 참사 날 학생들이 받을 보험금이 얼마인지 나오는 방송, 상상도 못 할 부정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나와 여전히 잘살고 있는 재벌, 뒷돈을 받아먹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인격보다는 성적으로, 직업과 수입으로, 다니는 학교 이름으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우리들의 인식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회적 풍토 속에 너희들이 무엇이 되건, 또 너희의 노력의 결과와 상관없이 너희들은 그 자체로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라는 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먹힐까 싶다.
오늘 조회는 먹히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너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