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극장에서의 추억
날마다 영화 같은 재밌는 날을 보냈지만, 고1인 내가 제일 기다리던 날은 시험날이었다. 물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 내 실력을 보여줄 날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사실 시험날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학교가 빨리 끝나는 날을 기다린 것이다. 그 당시 모든 고등학생이 그랬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난 매일 늦게까지 강제학습(그 당시에는 강제인 줄도 몰랐지만)을 해야 했고, 자습이 끝나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쁜 그런 생활을 했다.
대학교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집에 하나밖에 없는 인문계고등학생으로서 최소한 공부하는 척은 해야 했으므로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도 난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공부에 대한 간절함과 필요성을 몰랐던 내게 이런 날의 연속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학교생활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 지겨움과 피곤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지루함의 연속에서 나의 목마름을 잠시 잊게 해 주는 한 줄기 샘물 같은 시간이 시험 기간이었다. 하루에 두세 과목의 시험을 보고 학생들은 진짜 자율적으로 남아서 공부했다. 난 이 자율을 즐기고 싶었다. 더욱이 시험 잘 보라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면 힘들다고 부모님께서는 시험 기간에는 특별히 약간의 돈을 주셨다.
평소에 나에게 없던 ‘시간과 돈’ 이 두 가지가 모두 생긴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난 그날 시험을 마치자마자 시험 결과완 상관없이 집으로 아니 정확히는 집이 있는 동네에서 산을 넘으면 있는 동네 극장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낡아 나 같은 놈들이 아니면 오지 않는 허름한 극장이었지만, 서울 변두리에 딱 어울리는 극장이었다. 또 그런 극장이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두 개가 있어 어디를 갈 것인지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극장에 도착하면 오후 1시쯤 되었다. 약간의 주전부리로 점심을 때우고 나는 500원을 내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에선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고1인 나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교복 자율화에 따라 사복을 입었지만 두발 자율화에도 학생다운 머리를 강조한 선생님 때문에 스포츠머리를 해서 누가 봐도 고등학생임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표를 사고 혹시 학생이라고 못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쫄림’만 지나면 널브러질 수 있는 자유가 거기 있었다. 쾌쾌한 암모니아 냄새 이런 것들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또 솔직히 고백하면 그 당시 막 올라온 여체에 관한 관심도 내가 삼류 극장을 찾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극장 수준에 맞게 영화 중간중간 필름이 끊어져 영화를 보는 맛을 괴롭혔지만, 그것도 영화가 중단되었을 때 나오는 걸쭉한 쌍욕을 듣는 즐거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무슨 본 영화들을 보았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80년대 초반 한참 바람 불었던 “뽕, 산딸기….” 같은 성인 영화가 주였다. 그리고 약간의 서부 영화…. 지금 그 영화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영화가 그렇듯 다 비슷비슷한 내용이어서 내용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10분 정도 필름을 갈아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에 화면에서는 그 동네 패션을 선도하는 “○○ 라싸, XX 안경원” 등의 광고가 이어졌다. 화장실은 담배 연기와 오줌 냄새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다음 영화를 끊김 없이 보려면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난 이 시간이 정말 싫었다. 왠지 할 일 없고 한심한 서로의 모습을 누구에게 들키는 시간 같았기 때문이다. 또 속된 말로 양아치들에게 얼마 안 되는 몇 푼의 돈을 뜯기고는 더 그랬다.
두 편의 영화를 꼬박 보고 조금 더 돌아다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면 난 연기를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께서는 기특해하셨고 다음 날은 더 많은 돈을 주시기도 했다. 그럼 나는 또 시험을 마치자마자 어제 가지 않은 극장으로 가서 어제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자유는 시험 기간이 끝나면 끝나버리는 자유였기 때문에 더 간절하고 소중했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나면 난 다음 시험을 기다려야 했다. 난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버텼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자유를 느낄까? 피시방…. 잘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이 수십 년 전 고등학생 시절 나보다 더 자유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여전히 학교는 교칙, 규정, 상식, 성적을 들먹이며 그들을 비난하는 습관화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유를 찾고 있을 것이다. 꼭 찾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들도 사회와 학교 그리고 청춘이 주는 갑갑함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의 일탈을 그들의 어려움을 그들 나름대로 견디는 한 방식으로 인정해 주고 싶다. 잘 안되지만 그렇게 해주는 척이라도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험 날을 즐겼던 나의 일탈이 자랑스럽지는 않다. 특히 기대와 칭찬 그리고 기쁨으로 없는 돈에도 자식에 대한 희망과 걱정으로 돈을 주셨던 가족에게는 죄스럽다. 하지만 그 일탈이 없었다면 난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기다림이 나를 그 ‘사막 같은’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 준 ‘오아시스’였는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친한 친구 집에 가다 문득 생각이 나 일부러 극장이 있던 동네로 가보았다. 낡고 허름한 극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쇼핑센터와 복합 상영관이 있었다. 왠지 내 가슴 속 추억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괜히 왔다고 자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