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별곡

라면을 향한 질주는 아름다웠다.

by 이동수

고등학교 시절은 배고팠다. 꾹꾹 눌러 담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갔고 다녔지만 우리들의 배고픔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배고플 시기이지만, 버스에 시달리며, 이 반 저 반 다니며 온갖 일에 참견하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우리들의 에너지 소비량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항상 배고팠다.


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2교시나 3교시를 마치자마자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매점으로 달렸다. 매점은 학년에 따라 공부하던 건물과 층이 달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교실에서 정말 열심히 뛰어도 5분은 걸리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 거리를 죽어라 달려 3분 안에 주파하곤 했다. 분명 불가능한 일을 우린 매번 해냈다.

매점에 도착하면 우린 돈을 내고 바로 라면을 받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와서 2~3분 안에 먹고 가야 하는 우리를 위해 매점 사장님은 독특한 라면 조리법을 개발하셨다. 라면을 끓인 후 국물과 면을 분리하여 면만을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학생들이 주문하면 바로 국물을 부어 주셨다. 면이나 국물이 뜨거우면 먹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 미지근하게 해놓아 빨리 먹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셨다. 그래서 면은 퉁퉁 불어 있기 다반사였고, 국물은 안 그래도 맛이 없는 데 때론 찬물을 섞으라면 국물 특유의 맛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분명 맛없는 라면이었다. 하지만 그땐 정말 맛있었다. 노란 단무지 세 개와 나무젓가락 하나가 같이 담겨 있는 라면에 중독되어 우린 돈만 있으면 하루에 두 번도 먹곤 했다.


그런데 라면을 먹다 보면 가끔 파리 같은 것들이 라면에 둥둥 떠 있곤 했다. 면을 식힌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다 보니 면에 들어간 것일 것이다. 파리가 떠 있건 벌이 떠 있건 우린 그런 것에 관심 없었다. 사장님에게 그것을 보여주면 라면을 새것으로 교환해 주셨기 때문에 우린 라면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하기까지 했었다. 사과나 뭐 그런 것은 없었고 우리도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새 라면이 내 앞에 다시 왔고, 내가 먹는 라면 총량이 늘어난 것이 중요했고 기분이 좋았다. 정말 위생 관념이 없는, 그러다 병에 걸린다고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우린 그랬다. 그저 배고프고 친구들과 같이 먹는 것이 신났을 뿐이었다.


얼마 전 후배 교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땐 위생 관념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못 먹어서 그랬다고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전보다 좋아진 환경에서 공부한 후배 교사에게 라면 먹으러 친구들과 달려가는 그 즐거움을, 파리가 빠진 라면을 먹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절 난 라면 먹으러 달려가는 그 시간이, 친구들과 함께 먹는 그 더러운(?) 라면을 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하루 12시간이 넘게 공부해야만 했던 그 질곡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정치인이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고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 정치인은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도시락 두 개를 먹고, 그것도 부족해서 쉬는 시간 매점을 행해 달리는 총알 탄 육상선수가 되기도 하고, 파리가 나오는 라면 먹어도 즐거웠던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 정치인의 말은 와닿지 않았다. 그 정치인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따라서 나보다 더 어려운 시절, 더 안 좋은 환경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친구들과 같이 먹는 즐거움을 모르다니 그럼 그 정치인은 도대체 그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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