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걸이 빼!

마음대로 판단하고 마음대로 때린 선생님(?)

by 이동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등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아니 못했던 과목은 영어였다. 문과라고 수학은 조금 적게 하는 대신 영어를 많이 해 1주일에 7~8시간 넘게 배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대학 입학시험인 340점 만점의 학력고사에서 영어는 50점이었다. 대학을 가고 싶으면, 특히 좋은 대학을 가고 싶으면 영어는 반드시 잘해야 하는 과목이었지만 불행히도 난 중2 이후로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는 말을 하루 두 시간 넘게 듣는 척이라도 하고 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3학년 때는 제2외국어 독일어 시간에도 영어를 배웠다. 아무리 배워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영어를 포기했어도 다른 공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걸리면 정신없는 놈, 선생님을 무시하는 놈이라는 욕설과 함께 선생님의 매타작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인내력과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하는 연기력만 갈고닦고 있었다.


그날 영어 시간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인내력과 연기력을 갈고닦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와 내 짝을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뻗치라고 하셨다. 우린 영문도 몰랐지만 바로 나갔고 엎드려 뻗쳤다. 선생님은 우리가 싹수없이 수업 시간에 밥을 먹었다고 했다. 우린 엎드려 뻗친 채로 정말 먹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거짓말까지 한다고 들고 있던 당구 큐대 뒷부분으로 머리통을 때렸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파 머리를 잡고 뒹굴어도 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고 똑바로 엎드리라고 하셨다. 더 맞지 않으려면 빨리 엎드려야 했다. 우린 정말 사력을 다해 엎드렸다. 당구 큐대는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고 허벅지에 내려꽂혔다. 우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맞고 뒹굴고…. 뿐이었다.


그렇게 서너 대쯤 맞았을 때 갑자기 선생님이 싹수없는 놈이 꼭 겉멋만 들었다고 욕을 하시며 목걸이를 빼라고 하셨다. 난 목걸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짝을 이야기하는 줄 알고 엎드려 뻗친 채 내 짝을 봤지만, 녀석 역시 나를 볼 뿐이었다. 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선생님은 옷을 벗으라고 하셨다. 난 순순히 일어나 옷을 벗었다. 그 순간 겨울 외투 속에 옷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노란 쇠줄이 보였다. 이걸 선생님이 목걸이로 봤나 싶어, 선생님에게 목걸이가 아니라 옷걸인데요 했다. 맹세코 어떤 저항이나 선생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불경한 말투는 아니었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라는 사실만을 담백하게 전달할 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대든다고 때렸다. 이게 뭐지 싶었다. 친구는 5대 나는 모두 10대를 맞았던 것 같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야 우린 쩔뚝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종이 아니었으면 우린…. 생각하기도 싫었다. 깨질 듯한 머리,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만지며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먹지도 않은 걸 먹었다고 때리고, 차지도 않은 것을 찼다고 때리고, 대들지 않은 것도 대들었다 때리고. 아이들은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개가 된 기분이었다.


자습까지 힘들게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내가 쩔뚝거리는 것을 본 엄마가 왜 그러냐고 했고 난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했다. 위로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선생님 화나게 한 내 잘못이라고 했다. 내 수업 태도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도 그랬다. 정말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엄마나 형 모두 나보다 선생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난 정말 선생님들이 싫었고 학교가 싫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그들을 선생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남은 기간 내내 선생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가끔 아이들 말만 듣고 와서는 선생님에게 함부로 따지는 학부모들이 있다. 그럴 때면 선생으로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왜 학부모들은 학교를, 선생님을 믿지 않을까? 그럴 바엔 학교를 보내지 말지. 그런 학부모들을 천천히 다시 보면 내 또래다. 선생님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야 하는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방송에서 나오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학부모가 학교를 불신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선배 교사들의 내 엄마나 형 같은 학부모들의 조건 없는 신뢰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허벅지의 진보랏빛 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졌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잠재돼 있던 불신이 아이들의 몇 마디 말에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도 피해자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학부모로부터 말도 안 되는 취급을 받는 것이 선배를 잘못 둔 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교사가 돼 그 영어 선생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나처럼 선배 교사를 욕하는 후배들이 나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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