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창덕궁

지친 삶 속 작은 여유의 실체

by 이동수

학교는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경복궁과 청와대가 있었고, 학교 바로 뒤에는 감사원 등 국가 기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아름답다는 창덕궁과는 담장을 같이 쓰고 있는 덕분에 때마다 달라지는 황홀한 비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청와대 등 국가 기관이야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바로 옆 창덕궁은 달랐다.


당시 광복된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일제가 우리 문화를 낮춰 부르기 위해 사용했던 명칭인 ‘비원’으로 불렸고,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을 우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때는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랐다.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뽐을 내는 이 신비스러운 존재는 그저 옆집의 소나무요 앞 동네의 뽕나무일 뿐이었다. 책만 봐야 하는 것으로 내몰린 우리에게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그림의 떡이었던 것 같다. 그저 아주 가끔 공부에 지친 우리에게 ‘와’하는 감탄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지내던 창덕궁을 그래도 애국 조회 시간에는 꼭 쳐다봤던 것 같다. 아니 사열대가 창덕궁 쪽으로 있었기 때문에 쳐볼 수밖에는 없었다. 언제인지 그날도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애국 조회를 하고 있었다. 꼼짝하면 뒤로 끌려나가 얼차려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몸은 차렷 자세로 눈은 사열대 뒤 창덕궁을 멍하니 바라보며 교장 선생님 말씀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때 몇몇 아이들이 키득대기 시작했고 곧 대부분 아이가 웃었다. 우리들의 행동에 놀란 선생님들이 원인 파악을 위해, 신성한 조회 시간에 웃는 망할 놈을 혼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닐수록 우리의 웃음은 더 커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웃은 것이 선생님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가 웃은 것은 아무도 열심히 듣지 않는 데도 열성적으로 열심히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 뒤로 보이는 창덕궁 언덕에 있는 정자에서 군인인 듯한 사람이 우릴 보고 희한하고 과장된 몸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군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긴 시간 서 있는 우리를 불쌍하게 봐서 잠시 웃음을 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자유를 빼앗긴 동지(?)에 대한 작은 위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기나긴 교장 선생님의 엄숙한 훈화 뒤로 멀리 창덕궁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그 자체로 앞 화면과 대비되어 너무 우습고 즐거웠다.

우리들의 웃음은 으레 그렇듯이 학생부 선생님들의 욕설과 체벌로 끊겼지만, 그날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우리의 집중력이 하찮음을 탓하는 내용까지 더해져 보통 때보다 더 길었음에도 우린 그 긴 시간을 보통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아무 감흥 없이 지켜보던 창덕궁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야간 자습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던 우리는 창덕궁 쪽에서 나는 “따따따….” 하는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창덕궁을 보니, 깜깜한 밤하늘에 붉은 선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정말 예뻤다. 우린 무슨 불꽃놀이를 하는 줄 알고 오늘 무슨 날이냐고 서로에게 물었지만 모두 아무 날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또 소리가 나고 불은 선이 날아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기다려도 다시 안 하길래 우린 이런 짧고 멋진 광경을 본 것이 행운이라고 좋아했다.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말 잘하는 아이가 특유의 효과 음향을 넣어가며 열심히 어제의 그 장면을 재현했다. 또 누군가는 그것이 벌컨포였으며 서울 시대에 잘못 들어온 헬기 같은 것들에 여기는 청와대 같은 국가 중요 시설이 있는 곳인데 잘못 들어왔으니 빨리 나가라는 의미로 경고 사격을 한 것이라고 나름 전문지식을 뽐냈다. 우리에겐 누구 말이 맞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의 날아가는 붉은 선을 그것과 어울리는 효과 음향과 함께 보는 멋진 경험을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한참이 지난 후 벌컨포의 무서움과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알았을 때 내가 느낀 부조화는 교장 선생님의 엄숙한 훈화와 그 뒤로 펼쳐진 이름 모를 군인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서 느낀 그것과 다른 것 같지 않다. 창덕궁을 나는 군인이 지친 우리를 위로한 곳, 자습에 찌든 우리에게 멋진 불꽃놀이가 있었던 곳이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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