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삶을 바꿀 수도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학교에서는 영화를 보여주곤 했다. 대부분 반공 영화 아니면 정부를 홍보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서 단체로 본 영화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단 한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 시험이 끝나는 날 개봉관에서 영화를 볼 것이니 돈을 내라는 선생님 말에 난 짜증이 났다. 시험 기간마다 오백 원에 두 편을 볼 수 있는 동시 상영관 애 영화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천 원은 정말 내기 싫은 돈이었다. 그것도 한 편밖에 안 하는데 하고 투덜거리며 냈다.
시험이 끝나고 우린 줄지어서 영화관이 있는 종로4가(?)까지 걸어갔다. 길거리에서 욕을 하거나 때리긴 어려운 선생님들의 약점을 아는 우리는 가면서 당연히 줄을 벗어나 장난을 치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면서 갔다. 그래서 꽤 오래 걸었는데도 우린 즐겁고 신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영화를 처음 개봉하는 속칭 일류극장이 아니라 일류극장에서 내려온 영화를 다시 틀어주는 이류극장이었다. 우린 극장의 겉모습이나 시설에 실망해 학교가 돈을 먹었느니, 이천 원이면 우리 집 한 주 생활비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반발했다. 우리가 가장 불만인 것은, 사실 기대도 안 했지만, 야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극장 간판에는 등장인물과 주요 장면을 조금은 과장해서 그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거기에 여자 배우가 없었다. 우린 이런 영화를 왜 보러오느냐고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불만을 너나없이 터뜨렸다. 아수라장 같은 영화관 안에 선생님들의 “교양 없는 새끼, 학교의 명예….” 뭐 이런 말과 욕설이 뒤섞인 가운데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우린 극장이 주는 어두컴컴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고 고성을 지르고 누군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선생님들의 열 받아 지르는 고성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처럼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돈이 아까워서였는지 모르지만 잠시 조용했던 우린 얼마 안 가 또 투덜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영화는 ‘넬라 판타지아’라는 주제곡으로 더 유명한 ‘미션’이었는데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 남미에 가서 폭포 너머에 사는 순박한 원주민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음악으로 선교 활동을 하다 죽고 만다. 선교사가 죽자 그 원주민들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 바이올린을 갖고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여배우의 미끈한 몸을 바라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요구와 ‘미션’은 너무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나에게 준 충격은 컸다. 특히 나약한 원주민에 대한 잔학한 폭력 그리고 거기에 굴하지 않는 주인공, 원망할 줄 모르는 원주민의 순박함 그리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음악.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영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불쌍한 원주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것도 못 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영화를 본 이후 사회, 국가의 역할, 인간의 본성, 잔인함 등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이 영화를 보았다. 볼 때마다 영화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같은 고민을 하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 국가, 사회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 중요한 순간은 학교와 시험지 속이 아닌 계획하지 않은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 어쩌다 떠난 여행, 시간 보내기 위해 본 책, 어쩔 수 없이 본 영화 등에서 더 많이 일어난 것 같다.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험난한 고개를 넘은 이들이 이런 것들, ‘사치’를 부리기를 바란다. 그를 통해 어쩌면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그 순간이 삶에 아주 결정적 순간이 될지를.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전 끝났다. 수시에 합격해서 조금 여유가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아직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전히 저마다 선택한 방법에 따라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힘들고 지친 시기다. 어쩌면 이런 학생들에게 영화나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을 보라고 하면 우리에게 그런 ‘사치’부릴 시간이 있느냐고 참 개념 없는 소리한다는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년 전 한 편의 영화가 준 충격이 살아가는 데 아주 큰 영향을 준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사치’의 시간이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