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는 기계

상대에 대한 존중이 모든 일의 출발이다.

by 이동수

대학에 입학한 나는 여자라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앉아 강의를 듣는 낯선 경험을 했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만 다닌 난 여자아이들이 입고 오는 옷, 코끝으로 날아오는 화장품 냄새, 뭐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원하는 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학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던 나는 그 신기한 경험에 이끌려 하루하루 대학 생활을 연장하고 있었다.

강의 시간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도 했지만, 대학교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강의 시간보다 강의 외 시간에 배우는 것이 더 많았고 재밌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 한 1987년도는 전두환 정권 시절로 학내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이 퍼지고 암암리에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정권의 폭력성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 선두에 대학생들이 있었다.


학교 안에 있던 허름한 소강당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때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를 봤다. 비록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공수부대가 광주에 저지른 폭력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조작된 것임에 당황했고 혼란스러웠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선배를 따라 다니기 시작하며 선배가 권하는 책들을 읽었다. 또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뿌려지는 유인물을 읽고 연사의 강연을 들으며 난 분개했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 선배들처럼 또는 TV에 나오는 극렬 빨갱이(?)는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할 만큼 내 배포와 능력은 충분하지 못했다. 그저 배운지 얼마 안 되는 담배를 피우며 뜻도 모르는 말을 쓰며 흥분했을 뿐이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는 일부 학생들만이 것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에게 퍼졌고 우린 자연스레 수업 거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학생이 수업을 거부한다는 것은 학생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이므로 안 된다는 몇몇 교수님들의 호소와 수업을 듣지 않으면 F를 주겠다는 협박이 있었지만 우린 수업 거부를 했고 이어서 시험도 거부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찬란한 대학교 1학년은 화염병과 최루탄 가스로 얼룩진 채 흘러갔다.


2학년이 돼서도 전두환 정권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만든 헌법을 지키겠다고, 사회 질서를 위해 법을 엄정히 집행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요설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거의 모든 대학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했다. 우리도 수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업 거부가 계속되자 우리가 관성적으로 수업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수업 거부가 과연 효과적인지 등에 대해 회의감을 갖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기로 했지만, 선뜻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희보다 잘 안다는 건방짐 그리고 뭔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여간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에 나가서 우리의 이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시대와 역사를 들먹이며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런 얘기는 하도 들어서 이미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내 얘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난 이 아이들의 무표정, 무기력을 깰 뭔가 센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쩜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니? 그리고 조금 있다 결정할 때만 분위기 봐서 손을 드니? 너희들이 손드는 기계니?” 하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치게 흥분해서 앞뒤도 없이, 의미도 모르면서 주워들은 말 함부로 내뱉고 있던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순간 멈춰야 했지만 나는 여기서 물러서지 못했다. 한바탕 더 조악하고 상처 주는 비난을 아이들에게 퍼부은 후 의기양양 자리로 돌아왔다.


나의 무지와 폭력이 내가 그렇게 혐오했던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과 다름없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자신만 옳고,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모르는 무식한 것, 역사의식이 없는 이기적 존재라고 깎아내렸다.


딴소리하지 말고 자신만 따라오라는 생각과 행동이 곧 폭력임을 삶을 통해 배운 후 그때 그 날뛰는 망나니짓을 한 내가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30년이 넘은 지금도 동기들을 만나면 가끔 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내가 들어갈 쥐구멍은 없으므로 그저 웃음으로 미안함을 표현할 뿐이다.

정치, 경제, 교육 전 분야에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이익에 열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오히려 국가, 학생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30년 전 내 동기들이 내가 지금 느끼는 공포를 느꼈겠구나 싶다.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상대를 인정하고, 내 주장을 하기 전에 상대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폭력이, 극단적인 행동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 나타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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