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이 중시되는 사회를 꿈꾸며
대학 입학 후 시간은 정말 훅~ 갔다. 뭐든 처음 보고 듣는 것이었으며 당연히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짜놓은 대로만 살던 나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이 자유로움은 버겁기도 했다. 이 자유로움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폐쇄적인 고등학교까지의 생활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고 어떻게든 이것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낮은 사교성, 움츠린 자신감, 너무나 쉽게 찾아지는 핑계…. 뭐 아무튼 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마저 난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입학 후 경험한 충격적인 것 중 하나가 데모였다. 내가 입학한 87년도에는 거의 매일 학생 광장 앞에서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집회 후 서로 어깨 걸고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가려고 하면 전투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 최루탄을 쏘며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 바닥에 떨어지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며 최루가스를 뿜어대 ‘지랄탄’이라고 불리던 것도 마구 쏘아댔다. 또 몇몇 전투경찰들은 들고 있던 방패나 몽둥이로 학생들을 때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것은 ‘백골단’이었다. 이들은 데모 현장에서 머리에 하얀 헬멧을 쓰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잡아끌고 갔다. 이들은 전투경찰 중 선발되어 훈련을 받아서인지 학생들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별다른 방어 장비도 하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이 던지는 돌이나 화염병 같은 것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데모 현장에 있다 어떨 때는 학교 안까지 들어와 학생들을 때리고 잡아가기도 했다. 학생들은 교문을 나가려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전투경찰들은 최루탄과 지랄탄을 쏘고, 백골단은 학생들을 때리고 잡아가는 모습이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5.18이 가까워질수록, 전두환이 TV에 많이 나올수록 데모 횟수는 많아졌고 또 거칠어졌다. 우리 과 역시 다른 과들처럼 수업 거부를 논의했고 실행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위기를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험하니 1학년은 앞에 나서지 말고 뒤에서 구경하라는 선배들의 명령(?)으로 우린 뒤에 빠져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했다. 고백하면 그때 우리는 겁이 나 앞으로 나설 생각도 못 했고, 아직 무엇이 문제고 왜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하는 그거로 생각해 참여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는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데모는 대학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의 시위에 시민들은 손뼉을 쳐주고 백골단에 쫓기는 학생들을 자신들의 가게 안에, 집 안에 숨겨주었다. 하지만 언론은 침묵했으며 때론 무지막지한 왜곡 보도를 쏟아낼 뿐이었다.
데모의 열기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던 그 날도 우린 명동성당 근처에 기습적으로 모여 시위를 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시내 중심, 데모의 성지로 간다는 설렘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들떠 있었다. 전철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명동역에 정차하지 않았다. 우린 성배들의 지휘에 따라 두세 정거장 전에 내려 명동성당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을 피해 요리조리 골목을 헤매며 명동성당으로 최대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거리로 뛰쳐나와 구호를 외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선배가 “철수!” 하고 외쳤다. 어떻게 연락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집회 주최자로부터 경찰들의 봉쇄로 집회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긴장했던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허탈했다.
학교로 무사히 돌아와도 그 허탈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순간 같이 간 동기 녀석 중 하나가 담배를 피우며 ‘후~’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후련해 보였다. 왠지 그렇게 하면 허탈함이 없어질 것 같았다. 난 바로 친구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배웠다. 너무 쉬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친구에게 담배 몇 개를 더 달라고 하여 집에서 연습했다. 창문을 열고 낮에 배운 것을 떠올리며 몇 번 연습한 후 진짜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 학교 안 가냐?”는 엄마의 짜증 섞인 소리에 깨어 보니 아침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큰 고비를 넘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담배가 내 몸에 맞지 않는 해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는 못 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나의 흡연 생활은 그 뒤로 16년 동안 이어졌다. 이제 담배를 끊은 지 18년이 넘었다. 담배를 피운 시간보다 담배를 끊은 시간이 더 오래됐지만, 아직도 가끔 담배 생각이 나곤 한다. 정말 징그러운 담배다.
지금은 예전처럼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지 않고 촛불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한다. 또 그 결과로 대통령을 바꾸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 더 과정을 중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촛불로 이룬 이 성과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이 소중한 결실이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