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맹과 영상 중독
언제부터인지 종이 활자를 읽지 못한다. 이러다 정말 무식한 야만인이 될까 겁이 나기도 한다. 간혹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때, 진짜 독한 마음먹고 읽으려 해도 세 페이지를 못 넘기기 일쑤다. 일을 할 때는 피곤해서, 다른 해야 할 일에 쫓겨서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남는 거라고 시간 밖에는 없는 백수가 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이 없으니 더 읽기 싫다.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평면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남들은 뙤약볕에서 살이 익어가며 일하는데 한가로이 풀피리 부는 거라고 제 멋대로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살고 나중에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책을 읽는 낭만도 누려 보리라 기대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내 일 말고도 중요한 일이 너무 많고, 내가 세상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 정도로 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거친 시절보다 더 안 읽는다. 그보다는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고, 때로는 나 대신에 물어주고, 나보다 더 화를 내주는 영상을 보는 데 내 시간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 어떨 때는 잠시라도 영상을 보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이제 그만 봐야지 하다가도 다시 또 본다.
책을 보면 어떻고 영상을 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보다 딴생각을 하면 한두 페이지를 넘어가기 전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알 수 있지만, 영상을 보면 팔이 나 눈, 목 등 신체 일부가 아프지 않으면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보면 책과 영상을 보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 확실하다.
생각이 없어지기 전에, 더 나 대신 다른 사람에게 중독되어 내가 없어지기 전에 책을 읽어야겠다. 자신 없지만 오늘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