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3

'좋음'의 대가

by 이동수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 좋다. 내가 없어도 될 장소에 시간에 덩그렇게 있지 않아도 좋다. 생기지 않는 감정을 애초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띄지 않아도 좋다. 들인 노력 이상으로 주어지는 데 그렇지 못한 이들을 보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다. 매일매일 내일을 계획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좋다. 자질구레한 아내와 아이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 좋다. 커피숍 구석에 앉아 '이제 그만 가자'라는 말을 아내보다 나중에 하는 느긋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 참 좋다. 풀과 나무와 꽃의 오늘이 분명 어제와 다른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서 좋다.... 좋다.


마트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오면 안 되는 것에 온 듯 불편한 마음이, 사기 전 몇 번을 망설이는 쪼잔함이 싫다. 계획하다 스스로 그만두는 계획이 아쉽다.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는 내가 걱정된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밀며 아내의 카드를 보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고 네가 부럽다는 지인들의 위로가 버겁다.... 싫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들이 '좋음'이 요구하는 대가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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