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두면?

학교는 할 일이 없어 다니는 직장은 아니다.

by 이동수

대학 동창생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장례식장에 모였다. 망자에 대한 예를 차린 후 우린 서로의 늙은 모습을 보며 저마다 좋은 시절의 모습을 애써 떠올리려 애썼다. 즐겁고 아련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그 허무한 추억 놀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남은 직장 생활을 계산하고 또 어떻게 견딜 것인지 이야기했다. 얼마 전 선배들이 그랬듯 후배들의 예의와 개념이 없음을 우린 침을 튀겨가며 비판했다. 그것도 제풀에 시들해지자 페이스북에 올려 논 한 후배의 2020년 목표 "민폐 안 끼치기"에 공감하며 우리의 시대가 끝났음을 쓸쓸한 넋두리로 인정했다.

장례식장을 나와 우린 쉽게 헤어지지 못하고 길가에 서서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난 7년 후쯤 명예퇴직하련다. 30년 넘게 일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니? 선생 말고 다른 인생... 더 늙기 전에 나를 위해 살고 싶어."

"나도 몇 년 있다 그만두고 싶어."

"난 중학교여서 그런지, 아니지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겠지.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나와 아이들의 40년 차이가 극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건 그래... 후배 교사들 따라가기도 버겁고... 그저 민폐 안 끼치기가 목표잖아."

"어쩜... 어느 정치인 말대로 우린 존재 자체가 민폐 인지도 모르지."

"난 아직 아이들이 좋은 데... 애들도 나를 좋아하고..."

"그건 너의 착각일 걸."

"아냐, 애들이 나 좋아해."

"그럼, 넌 더 해라. 네가 아이들이 좋고 아이들이 널 좋아한다면."

"야, 대책도 없이 그만 두면 어떻게 해. 그만 두면 뭐 할 거 있어? 일 없이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리고 자식들 결혼... 아무튼 돈 들어갈 일이 한두 개니? 어떻게든 버텨야 해."

"선생을 할 거 없어서 하니?"


사고 치지 않는 한 짤릴 걱정 없는 안정된 직장에서 학생들과 후배들의 대접을 요구하며 "나 때는~"하며 꼰대 짓하는 선배에게 서산대사의 말을 인용하며 선배가 가는 길이 좀 있다 내가 갈 길이니 멋지게 살아달라고 이야기했던 내가...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학 동기의 모습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쩜 우리의 열정이 덜 필요로 해 보이는 학교, 소통되지 않는 아이들, 무시하는 학부모 사이에서 우린 지쳐 있었고 그 사이를 현실이라는 놈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내 삶의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할 일 없어서 학교에 다닌다는 말은 안 했으면 싶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자리가 열정으로 가득 찬 누군가에겐 진실로 간절한 자리임을 잊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조금 더 늦게 보여주기를, 그래 주기를 바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학교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