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평가하고 해결하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

학교폭력 분투기(5)

by 이동수

비가 오는 와중에 정신없이 등교 지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쉴 틈도 없이 옆 학교 학생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가 오해를 해 사과를 했는데도 때린다고 하여 너무 무서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담임선생님에게 조사할 내용을 말하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학생부실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2교시 후, 아이와 이야기해 본 선생님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의 잘못이라고, 증인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리라 예상했지만 답답했다. 또 어떻게 사실 확인을 해야 하나 싶었다. 조사하다 체하지나 않을는지. 내 아이가 하는 말이니, 게다가 증인도 있다고 하니... 혹시 학교 간 진실 게임이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라고 내 아이 말만 믿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사하리라 다짐했다.

아이는 점심을 먹고 심각한 얼굴로 학생부실로 왔다.

“○○야, 작년에 선생님이랑 수업해 봐서 선생님 잘 알지? 그리고 지금 선생님이 왜 오라고 했는지도 알지?”

“네, 선생님”

“선생님은 네가 지난 일을 감추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중요한 거는 지금부터야. 그러니 사실대로 했던 일은 했다고 하고, 안 한 일은 안 했다고 하자, 알았지?”

“네.”

“그럼 이 종이에 △△와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써, 감추지 말고.”

아이는 10분도 안 돼서 종이를 내밀었다. 상대방이 패드립(부모를 욕하는 말)을 했고 그게 화가 나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래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사과가 장난 같아 상대방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장난이었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상대방이 잘못한 부분은 과장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장난이었다고. 더욱이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 부분은 감추고 있었다.

“○○야, 선생님이 알고 있는 거와 많이 다른 데... 네가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고 하던데... 맞니?”

아이는 그제야 자신이 상대의 패드립으로 스트레스받은 부분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요구했음을 인정했다. 또 상대방이 자신이 요구한 돈보다 적게 준다고 해서 찾아가 때린다고 한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진짜로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쓴 사실확인서를 읽으며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 거였다.

“○○야, 선생님도 상대방이 부모님을 욕하는 패드립을 하면 화가 났을 거야. 그래서 네가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또 상대방 사과가 부족하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의 감정을 넌 돈으로 받으려고 했고 상대가 원하는 만큼 주지 않자 때린다고 협박했어. 선생님은 그 부분이 실망스러워.”

“죄송해요, 근데 정말로 받을 생각도, 때릴 생각도 없었어요”

“○○야, 그렇게 여러 번 톡을 보내고 또 다른 친구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상대가 네 말을 장난으로 생각했을까? 무엇보다 너의 감정은 정말 소중한 거야. 그걸 돈으로 계산하고 평가하고 더 받으려고 하는 건 너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니? 선생님이 너에게 돈을 주면 네 감정 살 수 있니? 그건 아니잖니?”

점심시간이 끝나 종례 후 다시 오라고 하고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낸 후에도 복잡한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시대라고 하지만 열네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 어른들 흉내를 내고, 또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대화와 용서보다는 돈으로 평가하고 해결하는 어른들을 보며 배운 아이들을 탓하기만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회가 변하지 않고 아이가 변할까? 답답했다. 안 될 것 같았다. 나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생각됐다. 당장 종례 후 찾아올 ○○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막막했다. 이야기한다고 아이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종례 후 찾아온 아이는 내 예상과 다르게 숨김없는 사실확인서와 진실한 반성문을 써왔다. 아이를 함부로 재단하고 멋대로 아파했던, 또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아이를 문제시하는 ‘병’이 들어 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는 오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진 나에게 아이들은 때 묻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순수해서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면 어른들과는 다른 바른길로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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