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독서를 하다 보면 불쑥 찾아드는 욕망이 있습니다. ‘나도 책을 써 보고 싶다.’ 특정인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책 쓰기. 작가들의 책을 읽고 영원히 독자로만 살아야만 할 것 같던 나에게 작가 욕망이 생긴 것입니다. ‘임승탁 지음’이라는 글씨가 표지에 적힌 책.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고 행복했습니다. 상상할수록 책 쓰기 욕망은 더 커져만 갔어요.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이글거리는 분화구의 모습처럼 내 마음의 분화구가 그랬어요. ‘어서 터져라.’ 한 권 한 권 책을 읽을 때마다 참지 못할 욕망이 샘솟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도서관에서 책 쓰기 책을 대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량도 ‘책 쓰기’ 관련 내용이 많아지고 있었죠. 책,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닥치는 대로 책 쓰기 정보를 찾아 공부했습니다. 첫 번째 생각이 뇌를 두드렸습니다. ‘무슨 책을 쓰고 싶은 건데?’ 무슨 책을 많이 읽고 있었는지 보았습니다. 단연 리더십 관련 책이 많았어요. 리더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을 교육하고 있었고, 그중에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30년 직업 생활도 리더의 삶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서 이제 리더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준비하는 아들과 다른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었던 것이죠.
수많은 말보다 책으로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공부한 것을 토대로 ‘가제목’을 정하고 목차를 구성했죠. 건물의 기본설계를 한 것처럼. 48개의 이야기 꼭지를 만들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보충했습니다. 어느 정도 분량이 채워진 듯했어요. 이렇게 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리더십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책 쓰기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리더십 관련 책들은 수없이 많고, 전문가들도 많다는 조언이었습니다. 책을 쓴다는 자세는 격려하고 응원해 주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냉철한 현실을 깨우쳐 주셨어요.
내 마음의 분화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들끓는 분화구를 이대로 굳어버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고 책 쓰기 특강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특강들이 있었어요. 대부분 서울에서 진행되었기에 참석하려면 휴가를 내야 했습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 백 권의 책을 출간한 분의 특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개별 상담도 받았습니다. 특강은 좋았지만, 책 쓰기 과정을 수강하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책 쓰기를 배우는데 이렇게 큰 고액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상담 끝에 수강하기로 결정한 듯했어요. 옆에 앉아 수강했던 분도 결재를 했어요. 책을 출간하면 수강비 이상의 브랜드 구축과 금전적 보상이 있다는 결론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비싼데’ 자신도 없었고, 확신도 없어서 수강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찾은 곳은 수강료는 조금 싼데 강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서 포기했습니다. 책 한 권 출간하기 위해 배움의 과정은 필요한 듯한데 그 비용이 부담이 되었죠.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혔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낙심을 하고 있던 차에 지인 중의 한 명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미 책을 출간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저자였죠. 그의 조언을 듣고 어느 책 쓰기 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들었던 책 쓰기 장점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를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시간관리 능력을 갖추게 되고,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하게 된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책 쓰기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과정과 같습니다. 사랑해서 아이를 가졌고, 뱃속의 아이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죠. 좋은 음식, 좋은 생각, 적당한 운동, 좋은 음악과 책, 뱃속의 아이와 대화하며 엄마의 존재와 곧 보게 될 세상에 대해 알려 줍니다. 10개월이 되면 출산의 고통을 피할 수 없죠. 아이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깨울 때까지 산모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이 순간은 책 쓰기 과정에서는 퇴고의 과정과 같아요.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퇴고의 과정이 책의 생명줄과 같기에 그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책을 쓸 때도 퇴고의 과정은 힘이 들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곳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속으로 읽으며 고치다가 소리 내어 읽으면 또 고치고 싶은 곳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퇴고를 중단하고 쉬었다가 다시 보면 또 고칠 곳이 보였습니다. 이러다 투고할 날이 올까, 하는 마음까지 생겼어요. 투고 후 출판사와의 퇴고 과정은 3회 정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퇴고를 하고서도 아쉬움은 있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수정을 요청해 보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도 더 이상 수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출판사 나름대로 출판 일정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퇴고는 끝이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동화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쓰기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다.”라고 했고, 존 어빙은 “내 인생의 절반은 고쳐 쓰는 작업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걸레와 같은 초고’를 ‘위대한 고쳐쓰기’를 통해 최고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작가가 할 일입니다. 목차가 완성될 때쯤 해서 출간 계획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출간 계획서는 책 쓰기의 원동력이며 방향 제시 역할을 합니다. 그 구성은 ‘가제(임시 제목), 기획의도, 저자 프로필, 예상 원고 내용(원고 목차), 타깃 독자. 경쟁 도서와 참고도서 분석, 마케팅 전략’ 등입니다.
어느 정도 퇴고의 과정을 거쳤거나 탈고했다면 출판사 투고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 또한 출간 전 고비죠. 나는 100여 곳의 출판사를 투고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메일을 보낸 후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대략 2주 후부터는 원고 검토 결과에 대한 답변이 오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 거절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실망과 상처가 쌓여만 갔습니다.
‘선생님의 원고를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저희의 출간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정성 들여 쓰신 이 원고가 다른 곳에서 훌륭한 책으로 출간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000 편집부 드림’
이 순간들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어차피 100여 군데 중 1개 출판사와만 계약하면 됩니다. 계약하자는 출판사가 한 군데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거절 메시지가 10개, 20개 쌓여갔습니다. 기분전환을 위해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드디어 두 개의 출판사에서 소식이 왔고 두 곳을 놓고 고민하다 파주에 있는 어느 출판사와 최종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출판의 A to Z 과정을 경험해 본 지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자비로 몇 백만 원을 들여 출간했다는 사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출간은 했는데 책의 질이 높지 않은 모습(편집했는지? 누가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가독성도 떨어졌다), 책 쓰기 과정을 함께 들었지만 책을 출간하지 못한 사람. 결과의 모습은 다르지만 어쨌든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나 버킷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면 딱 한 명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책 한 권 쓰기에 도전해 보는 것. 그 이유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책을 통해 나는 인생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세상에 나처럼 사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았다. 독서는 내게 희망을 줬다. 책은 내게 열려진 문과 같았다.”
내가 쓴 책이 어느 독자의 삶에 희망이 되어 오프라 윈프리처럼 변화된 삶을 산다면 그 얼마나 기쁠까요? 책 쓰기는 나의 페르소나를 들여다보며 내 삶을 완성하는 행위이며 타인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활력소입니다. 30여 년의 리더의 길 끝자락에서 책 쓰기 수업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책을 쓰면 성장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책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림: DALL-E, 내 삶을 완성하는 행위_책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