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가장 높은 자리를 뒤에서 지켜보는 산이 있다.
궁궐의 배후, 청와대의 등 뒤,
조선의 권력자들과 현대의 정치가들이
수백 년간 거쳐 간 그 자리를
말없이 바라보는 산, 인왕산이다.
이 산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건을 말하지 않고, 인물을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았고,
그 누구보다 오래 기억하고 있다.
인왕산은 침묵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판단하며,
침묵으로 경계한다.
한때 이 산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민간인의 접근은 금지되었고,
군화 발자국만이 능선을 지나갔다.
그곳은 지켜야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는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되었다.
경계의 공간은 여백의 길이 되었고,
감시는 기억으로,
긴장은 사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건
제도의 변화나 시대의 진보만이 아니었다.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킨 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흘러가도 산은 남았고,
말들이 떠나도 침묵은 자리를 지켰다.
이 책은 말 없는 산이
권력자에게 건네는 질문들을 담았다.
그 질문은 날카롭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보게 만드는
침묵의 시선으로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또 한 명의 리더를 선택하려 한다.
그러니 다시 이 산에게 물어야 한다.
그 사람은 감시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같은 모습일까?
그 사람은 권력이 떠난 후,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침묵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투명한가?
산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침묵이, 그 어떤 외침보다 많은 말을 품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