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인왕산은 가장 높은 자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다
청와대는 북악산을 등지고 있지만,
인왕산은 그 건물의 서편에서 조용히 마주 선 산이다.
언뜻 보기에 별다른 역할 없이 주변을 지키는 산처럼 보이지만,
인왕산은 오래전부터 권력의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던 감시의 언덕이었다.
왕조 시대에도, 현대 정권 시대에도
이 산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더 이상 권력자의 집무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권위가 남겨 놓은 풍경의 중심이다.
인왕산은 그 뒤에서 말없이 그 공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권력자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을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붙잡고 있다.
이 산의 시선은 경계가 아니다.
강한 감시도, 날 선 비판도 아니다.
다만, 오래도록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무게와 그림자를 지켜봤다.
권력은 늘 앞으로 향한다.
비전, 계획, 실행, 성공.
그러나 인왕산은 등 뒤를 본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표정,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않은 태도,
그것이 이 산이 기억하는 권력자의 진짜 모습이다.
한때, 청와대를 오가는 검은 차량들 사이로
이 산은 묵묵히 있었다.
기록하지 않았지만 기억하고,
개입하지 않았지만 관찰했다.
이제 청와대는 개방되었고,
그 자리는 시민의 쉼터가 되었다.
하지만 인왕산의 침묵은 여전히 깊다.
그 자리를 거쳐 간 이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산은 권력자의 등을 받친 산이 아니라,
권력자의 마음을 지켜본 산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자리를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묻는다.
"너라면, 그 자리에 어떤 얼굴로 앉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