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했습니다
나의 업무는 수출입 서류 업무이다. 제품을 수출. 수입할 때, 필요한 모든 서류를 구비하는 업무이다.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은행 Nego 서류도 포함한다. 틀리면.... 영업관리부 이사님께 불려 올라갈 정도로 꼼꼼함을 요하는 업무, 그 모든 서류의 수령-> 확인 검토-> 수정-> 컨펌 후 세팅-> 유관부서로 이관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서류 한 장이 1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시 영업팀의 성수기는 연초, 여름 7~9월 그리고 연말 [SS-SPRING&SUMMER / FW-FALL&WINTER / OFF SEASON]이다. 1월 입사 후 딱 1주일 정시 퇴근의 꿀맛을 본 후, 점점 늦어지는 퇴근시간 8시,, 9시를 넘어 10시에 겨우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선배의 말이 이렇게 칼같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업무가 턱까지 차다 못해 머리 위에 언 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도가 셌고 모두들 견디고 있는 분위기라 누구 하나 토다는 사람 없었다. 신입은 더더욱 발언권이 없다. 배우기 바쁘지..
성수기에다 늘~ 납기에 쫓기는 바쁜 일상이었으니 야근도 당연히 한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자발적 야근!이라고 말이다. 지금을 말할 수 있다! 자발적 야근이라고 착각한 거라고. 야근에 자발적인 게 어디 있더냐 부서 혹은 회사에서 만든 문화 혹은 분위기에 우리는 압도당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야근이니 배는 고프지 말아야지, 저녁이나 먹고 오자!" 그렇게 1~2시간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6시가 넘어가면서 업무 속도는 느려진다. 아니면 게으름을 피우며 소비되는 시간들 그렇게 야근은 시간 낭비의 산물이 된다.
나는 그 안에서 그렇게 보고 배웠다. 그게 맞는다고, 틀리지 않았다고. 신입은 그저 야근 식사로 점점 돼지가 되어간다. 야근 밥은 비만으로 가는 최고의 롤러코스터이다.
영업이 미친 듯이 바빠 날뛰면, 유관부서인 영업관리부, 자재부, 회계부서가 함께 바빠진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으쌰 으쌰 한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 스토리 인가... 나는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짜증과 비꼼과 높은 언성이 오간다. 꼭 회사 전체가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어리 같았다. 그래도 그중 가장 양반은 마지막에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박 대리님과 이 대리님 정도...
업무 특성상 영업은 협력업체들과 수백 통의 전화를 걸고 받아야 한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발과 강. 약을 오가는 목소리 톤, 이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즉 나에게도 고스란히 이슬비처럼 스며들어 장착이 되어갔다.
그렇게 6-7개월이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그 사이에 그 많던 동기들의 절반이 퇴사를 하였다. 이유는 다양하다 적성에 안 맞아서, 업무 강도가 높아서, 다른 곳에 합격해서, 유학을 가서 등등 퇴사한 동기들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의류 밴더 무역회사는 상시 모집을 많이 하는 곳도 있고 1년에 평균 3번 정도 신입을 뽑는다는 사실을, 중소기업일수록 이직률이 높다. 우리 회사는 그해 2번의 신입을 더 뽑는다. 그리고 그해 겨울...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 중 남아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정확히 5명이었다. 나도 그때 이 업계를 떠났어야 했던가....
8월이 되면서 휴가 시즌이 되었다. 우리 회사의 특징은 자율 휴가제가 아닌 고정 휴가제 즉 여름휴가 날짜가 정해져 있다. 3일간 회사문을 닫는다고 봐야 한다. 업체에서는 오히려 편하다고 하지만 고정 휴가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갈린다. 장점은 팀원 간에 휴가 일정 조율이 필요 없다. 눈치 안 봐도 된다. 단점은 무조건 가지 않으면 그해 여름휴가는 제대로 쓰기 힘들다. 못 간다고 봐야 한다.
나는 10월에 다녀오려 했었다.. 이게 뭐람.. 회사 방침이니 따를 수밖에. 아쉬운 생각에 잠겼을 때, 갑작스럽게 팀 회의가 열렸다. 8월 휴가 앞두고 서류에 문제 되면 큰일이니 3일 동안 업무 공백은 이번에 큰 타격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올해만 그러는 건가? 아님 해마다 이랬던 건가?
수출한 제품의 Arrival date가 애매하게 걸렸다는 얘기인 것이다. 제품 도착 1주 전에는 제품 통관 서류를 바이어 쪽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부장님께서는 물량이 너무 크고 바이어도 많으니, 수출 서류를 담당하는 권 대리님, 선배, 나 이렇게 3명은 휴가를 뒤로 미루라는 얘기를 하셨다. 10월~11월 사이에 다녀오라고 하시니 인사팀에 사유서와 함께 우리는 휴가 일정 조정서를 제출하였다.
처음에는 이 결정이 좋았다. 나는 원래 10월에 휴가 가고 싶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그리고 업무상 조율이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휴가 일정 조정이 아닌 반납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입사한 그해 여름휴가의 기억이 없다. 분명히 휴가를 다녀오긴 하였는데 왜 사진도 기록도 없을까? 총 3일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우리는 10~11월로 미뤄진 상태에서 모두들 8월에 휴가를 다녀온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다 같이 다녀오는 휴가 기간에 가지 못하면 10월 나의 공백으로 생기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진다는 문제!
나는 휴가를 3일 쭉~이어서 쓰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씩 띄엄띄엄 쉬었던 것이다.
"바쁘니깐 휴가 이어서 쉬지 마 알았지?" 10월에 어느 날 선배의 말씀이 귓가에서 맴돈다. "어쩔 수 없지 바쁜데, 나 하나 때문에 몇 명이 고생할 순 없잖아." 스스로 자발적이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한다.
그때 한마디라도 할걸, "왜요? 왜 저만 이어서 못 가나요?"
속으로 삭힌 그 말이 된똥으로 되어 몸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