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글에는 겉모습이 아닌 본모습이 드러난다.

by 변대원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거울로 비춰보는 일이다.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일들을 겪고, 더 많은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 생각들은 내가 인식하는 나의 일부이지만,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지 않는다.


먼 옛날 언어가 탄생하기 전 인류는 아마 말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의사소통했을 것이다. 문명이 탄생하고 인류가 진화함에 따라 언어와 문자가 만들어졌고, 인간은 무의식적인 연결보다는 의식적인 사고로 인한 소통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대화하기 시작했고, 언어를 통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인류에 이르러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정의한 것처럼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가 된 세상에 살게 되었다.


KakaoTalk_20210216_134148649.jpg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동서문화사)


의식은 말을 통해 체계화되고, 글을 통해 완성된다. 글은 내면의 생각을 구체화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종이 위에 내가 가진 언어의 범위 안에서 표현되고, 그렇게 표현된 글은 나의 일부이면서도 나의 밖으로 드러난 무언가가 된다.


내가 쓴 글은 나의 분신들이다. 글은 나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게 마련이다. 타인의 표정을 읽고, 기사를 통해 묘사된 세상을 읽고, 숫자로 표시된 물건의 가격과 통장의 잔고를 읽는다. 물론 책도 읽는다.

책은 타인의 글이다. 타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을 읽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그 글 역시 그 작가의 분신 중 하나일 뿐이기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글을 통해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나보다 수준 높은 생각의 결과물이 담긴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언어의 한계가 확장됨으로써 의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내 의식체계를 완성하기 어렵다. 내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막연하게 알았던 나를 더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글은 단지 문자들의 나열이 아니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글쓴이의 감정, 의식, 생각, 태도 등이 드러난다. 로마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겉모습 밑에 감추어진 본모습을 찾으라”고.


글에는 겉모습이 아닌 본모습이 드러난다. 한껏 꾸미고, 치장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 주려해도 어떤 식으로든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글이다.


요즘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니 마음이 편안하다. 아마 내가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겠다는 뜻이다. 스스로 외면하고 있던 나를 다시 돌보겠다는 의지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 있다. 누군가는 몫이 ‘목숨’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삶의 몫은 자신을 글로 표현해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고,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한 편의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한 삶은 끝나지 않는다.



참고문헌 ::

1)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동서문화사)

2) 삶의 기술-로마의 현자 에픽테토스에게 배우는 슬기롭게 사는 법 (샤론 르벨/싱긋)

3) 심연-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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