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아

글이라는 퍼즐조각

by 변대원

글을 매일 쓰면서 달라진 부분 중에 하나가 본능적으로 글감을 찾는다는 점이다. 낮에 잠시 교보문고를 다녀오면서 아주 좋은 글 소재가 떠올랐다. 오늘은 이걸로 쓰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사무실로 걸어왔다. 그런데 비가 와서 일까? 아님 중간에 카톡 메시지를 확인해서일까? 막상 사무실로 올라와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아까 또렷했던 소재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잠시 또 다른 일을 하며 생각을 비웠다가 다시 생각하다보면 기억이 날 때도 많은데, 오늘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줄어들었나?’

‘어제 잠을 너무 조금 자서 집중력이 흐려졌어.’

‘아이들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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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다른 생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원인을 찾고 있다. 사실 원인은 간단하다. 메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릿한 메모가 선명한 기억보다 오래간다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한 대가일 뿐이다.


글을 쓰는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다. 일상에 있었던 일을, 내 사유가 머물다간 자리를, 내 경험으로 깨닫게 된 사실을 적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두지 않으면 우리는 곧잘 잊게 된다. 그 당시에는 분명 평생 잊지 않을 것만 같은 기억이었지만,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왜곡되며 필요에 따라 재조합된다.


반면에 적어놓은 것은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두 단어만 마주해도 그 순간의 기억의 좌표로 생각을 소환한다. 특히 책을 읽다가 급히 메모해둔 것들을 볼 때, 몇 년이 지난 블로그 글을 다시 볼 때 마치 타임머신을 탄듯 잠시 그 순간, 그 장소로 기억의 현관(portal)을 열고 다녀오는 경험을 한다.


생각이 비누거품이라면, 글은 퍼즐조각이다. 생각은 아무리 커도 시간이 지나면 터져서 사라지지만, 글은 한조각만으로도 다른 그림을 연상하게 만드는 퍼즐의 일부분이 된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적어놓아야 기억할 수 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잃어버린 기억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잃어버린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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