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나는 요리를 할 줄 안다. 우리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맛'이다. 아내는 거의 대부분의 요리를 맛있게 만든다. 그래서 잘하는 거다. 나도 종종 맛있게 하는 요리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그저 '할 줄 아는' 수준이다. 쉽게 말해 맛이 없다는 소리다.
우리 교회 반주자는 피아노를 잘 친다. 악보만 주면 바로 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곡의 빠르기와 분위기, 노래를 할 때의 포인트 등을 금방 캐치한다. 나도 피아노를 칠 줄 안다. 어렸을 때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을 배우는 바람에 피아노 치는 것이 평생의 로망이 되었지만, 운 좋게 군대에서 코드 반주를 배울 기회가 있어서 정말 딱 코드만 칠 줄 안다. 그래서 아무도 내가 피아노를 쳐도 '잘' 친다는 말은 안 한다.
가끔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 이미 아는 것을 다시 접하면 뭔가 시시함을 느낀다. 내가 그걸 잘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알고 있을 때 그 현상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때 나의 수준은 그저 '할 줄 아는' 수준이다. 이런 단계를 '초보'라고 한다.
초보는 무언가 알고 처음 그것을 해본 사람을 말한다. 경험치가 적다. 그래서 생각은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반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은 경험치가 많다. 아는 것의 차이는 짧은 시간에 배워서 따라갈 수 있지만, 경험치의 차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 '실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경험치의 누적에서 나온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책을 보면 재미가 없었다. 어떤 건 다 아는 이야기 같아서 재미가 없고, 어떤 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 독서에 조금 눈을 뜨고 보니 좋은 책일수록 다시 보는 재미가 있다. 이미 몇 번이나 봐서 다 아는 것 같지만, 다시 볼 때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발견한다. 경험치가 쌓여갈수록 보는 안목은 깊어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그저 내 글이 좋은 줄만 알았다. 물론 여전히 글을 "쓸 줄 아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최소한 담백해지긴 했으니까.
글을 꾸준히 쓰면서 책을 보면 이제는 책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체가 보인다. 글을 쓰기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글의 깊이가 몇배는 더 강하게 전달된다.
'아~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하고 온 몸으로 느낀다. 때론 나도 모르게 전율한다. 전율은 글의 깊이만큼 전해진다. 분명 깊이 있는 생각, 깊이 있는 경험, 깊이 있는 삶 자체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있다.
뭔가 깊이 모를 때는 쉽게 평가하거나 단정 짓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게 힘들어진다. 아직 내가 누군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하여 타인에게 머물던 시선은 이제 나를 향한다. 묵묵히 오늘 하루의 작은 전진을 하려 한다.
매일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던 날이 작년 3월 8일이었다. 그 후 거의 매일 글을 적었다. 물론 그전에도 책을 쓰고 수정하면서 많은 시간 글을 썼지만, 이렇게 매일 적진 않았다. 불과 1년 만에 책 2권 분량의 글이 쌓였다. 비록 그 글들이 다 책에 실리진 못하더라도 내가 작은 성장을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안다.
그 글 하나하나가 작은 거울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했고, 글을 통해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을 더 발견했다. 때론 기쁘고 때론 아팠다. 때론 지쳤고, 때론 열정에 넘쳤다.
오늘도 하루의 끝을 잠시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고요함 속에 시계 초침 소리와 키보드 소리만이 나지막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