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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29. 2023

#_기록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다

기록한 것만이 결국 기억됩니다.

금요일 저녁, 어제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로제떡볶이를 사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얼마 전에 신청한 강의를 듣고 있으니 아내가 퇴근하고 왔습니다. 아내가 먹을 것도 간단히 챙겨주고 다시 소파에 와서 강의를 듣습니다. 강좌수는 많은데 편당 길이가 짧아서 3개월 과정을 3일 만에 틈틈이 정주행 했습니다. 이제는 한 달 동안 매일 한 강씩 꼭꼭 씹어먹으며 내용 하나하나를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려서 최근에 번역도서 작업을 위해 참고하려고 가져온 책을 펼쳐듭니다. 근데 영 눈에 들어오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배가 부른 탓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관심 있는 영상들을 찾아봅니다. 요즘 경제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요즘은 그런 뉴스들에 빼앗기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는데도, 쉽지가 않습니다. 차라리 일찍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막상 자려고 보니 이런, 아까 돌려놓았던 빨래를 널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널기만 하고, 걷은 빨래는 내일 정리해야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나 봅니다. 기상명상을 하고,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합니다. 씻고 나와서 어제 개지 못한 빨래를 여유 있게 갭니다. 좀 귀찮긴 하지만.. 정리해 놓아야 집을 나서는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아직도 자는 모양입니다. 사무실 갈 채비를 하고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비 오는 주말 오전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입니다.

비는 오지만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사무실로 바로 갈까 하다가 어제 가져온 책을 덜 읽기도 했고, 마침 쿠폰도 있어서 논현역 근처의 스타벅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오는 주말의 스타벅스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딱히 멋진 풍경은 아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네요)


책을 읽다 보니 이런저런 좋은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참 이상하게도 늘 챙긴다고 하는데, 꼭 노트나 메모장을 놓고 온 날에 아이디어는 왜 더 많이 떠오르는 건지.ㅋㅋ

지금 쓰고 있는 독서법 책 제목도 떠오르고, 올해 출간하고 싶은 책에 대한 아이디어도 떠오릅니다. 홍보 문구도 떠오르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결국엔 결정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핵심 카피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안 되겠습니다. 원래는 좀 더 느긋하게 책 좀 읽고 가려했는데, 이 근처에 좋아하는 단골식당에 가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바로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비는 오고 버스의 사람은 많고 앞문과 뒷문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순식간에 만원 버스가 됩니다. 하지만 아들이 용돈을 모아 생일 선물로 사준 저가형 헤드폰이 저를 구원해 줍니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노래를 듣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 제법 불편하고 짜증날만 한 상황일 텐데 말이죠. 절묘하게 흥겨운 음악과 내가 서있는 자리 앞에 앉아있는 학생이 꾸벅꾸벅 졸면서 잠을 깨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빨리 이 느낌을 글로 옮겨적고 싶어서 마음 한쪽 어딘가가 계속 간질거렸습니다.


김신지 작가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순 없으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지겠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기만의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겪게 됩니다. 하루가 촘촘해질 테니까요. 기록해 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는 기다려줄 테니까요.


어쩌면 오늘의 일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저에게 중요한 순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기록하기 때문에 특별할 것 없는 주말 오전의 짧은 일상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어젯밤 이 자리를 나서 집으로 가던 순간부터 하루가 지나 다시 이 자리로 오는 그 시간까지의 간격이 글 속에서 서서히 좁혀지다 이렇게 딱 만나는군요.


당신은 오늘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요?

1년 뒤 혹은 10년 뒤에도 저는 오늘 기록한 이 글을 읽으며, 오늘 느낀 순간의 기억들을 반추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삶의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점점 더 중요한 사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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