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에서의 독서란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 자체다.
책을 비약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3년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 게 큰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훨씬 어릴 때부터 풍부한 독서를 해왔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읽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물론 지금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책에서 자유롭고 책을 즐길 수 있는 상태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 독서해온 분들과는 질과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짧은 시간동안의 성장이 가져다 준 선물은 나의 변화의 과정을 스스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은 자신이 왜 책을 잘 읽게 되었는지, 책을 읽을 때 어떤 모드로 달라지는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식하지 못한다기보다 인식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고, 독서는 나 자신을 찾게 도와주는 등대이자, 길잡이였다. 하여 독서를 통한 성장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했다. 수많은 독서법 책을 탐독했고, 더 나은 독서법의 ‘정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독서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든 순간 무엇인가 읽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독서란 곧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 자체다. 누군가의 독서법을 찾고자 했던 것은 내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독서법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은 인생에도 정답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매 순간 무언가를 읽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만의 관점에서 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 단추다.
나의 관점이 온전히 자리 잡힌 이후에 비로소 타인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 지독하게 나만의 독서법을 찾으려 애썼던 이유도 같다.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을 먼저 떠야만 타인의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자유로운 독서는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지만, 결코 나만의 시작이 전부가 아니다. 그게 첫번째 계단일 뿐이다. 독서는 타인의 삶과 그들의 시선을 공감하며 내 영혼의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고집이 세지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도 없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독서는 읽기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넘어 세상과 공명하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