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는 더 많은 여백이 필요합니다.
살고 싶은 집과 살고 싶지 않은 집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여백(餘白)입니다.
많이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은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집일 겁니다.
그런데 막상 더 넓은 집으로 가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근사하게 살지 못합니다.
여백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처럼 정갈한 거실 풍경은 좋은 가구 때문일까요? 아니면 멋진 인테리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가구와 인테리어를 하더라도 그것이 그 공간을 다 차지해 버리면 정작 그 공간의 주인인 내가 머물 공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비워놓느냐가 좋은 공간을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텅 빈 공간에 편하게 앉을 의자 하나와 거기서 책 읽을 때 활용할 작은 테이블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가요?
우리의 옷장은 자주 입는 옷 10%와 1년에 한두 번 입는 옷 2~30%, 그리고 몇 년간 입지 않지만 언젠가는 입을 것 같아 버리지 않고 있는 옷 6~70%로 채워져 있지 않나요?
서랍에는 거의 쓰지 않는 잡동사니로 차있고, 다용도실이나 베란다도 처음과 달리 점점 분리수거장이 되어갑니다.
저는 그 본질적 이유를 필요와 소비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찾고 싶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좋은' 물건에 노출되고 있고, 끊임없이 '더 좋은' 물건을 구입하게 됩니다.
이전에 쓰던 것은 여전히 쓸만하지만 낡은 것이 되고, 지금 새로운 것을 써야만 뭔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만약 내가 명확한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내가 뚜렷한 소비철학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복해서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반복해서 노출되는 것을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설령 그게 거짓이라고 해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반복되면 중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내가 정말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구입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광고, 수많은 상품, 수많은 피드와 릴스, 수많은 숏폼 속에서 반복해서 보았던 것을 내 삶에 반영하려고 할 겁니다. (*물론 당신은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고, 여전히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제 자신을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반복해서 노출해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꾸 내 공간을, 내 삶을 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들로 채워가게 됩니다.
문제는 그것에 채워진 것들이 내 공간이나 내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채워지면 더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이 채워지는 바람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냉동실에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새로 구입한 냉동보관해야 할 먹거리들을 넣을 공간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집에 들어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고 뭔가 갑갑하다면, 집에 나에게 필요한 여유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가득 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인생이 즐겁지 않은 건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삶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필요하다는 것들로 채워지면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여백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이렇게 맑은 날에는 딱 10초만이라도 하늘을 올려보세요.
어떤가요?
불과 10초 만에 마음이 좀 여유로워지지 않았나요?
하늘은 지구의 여백입니다. 그리고 땅보다 훨씬 크고 넓죠.
인간은 어김없이 모두가 땅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하늘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발견한 정말 소중한 통찰은 이것입니다.
행복은 무엇을 채워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남은 여백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공간에 충분한 여백을 만들어 두면 그 공간은 자유롭습니다.
삶 속에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 또한 여백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잘 사는 방법은 빈틈없이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 한 가지를 반드시 실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쏟던 에너지가 남으면서 여유가 생깁니다.
우리가 여유가 없는 이유는 다 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간을 다 알차게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어느 곳에도 꽉 채우고 행복한 삶은 없습니다. 꽉 차면 숨만 막힐 뿐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번 돈으로 자꾸만 내 공간과 내 시간을 무언가로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채워 넣은 것들이 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명백한 착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짐이 됩니다. 그래서 채우려 할수록 내 삶이라는 배는 자꾸만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비우려고 하면 두렵습니다.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버리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니 결국엔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합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내 삶에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기준인지,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인지 검증하지 않고,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정기적으로 꽃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사기 위해 1~2주에 한번 꽃도매시장에 가서 꽃을 고르고 집과 사무실에 사 온 꽃을 꽂아둡니다.
그렇게 돈과 시간을 써서 꽃병에 꽂아 둔 꽃은 내가 그 공간에 머무르는 내내 저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꽃을 사면서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할까 아이들이 이쁘다고 할까 생각하는 시간 자체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우연히 시작한 이 행동은 앞으로 오래 지속해 볼 생각입니다.
반대로 얼마 전에 충동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인터넷으로 구입했던 바지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아서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기껏 새로 산 옷이라 버리기도 아깝고 누구 줄 사람도 마땅치 않습니다. 충분히 나에게 어울리는 물건인지 고민하지 않고 덥석 구입한 제 잘못입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이 나를 풍요롭게 하는지 점검해 보려 합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나를 더 풍요롭게 하는 일인가?
지금 사려는 물건이 나를 더 풍요롭게 해 주는가?
물건을 구입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정말 내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의 끊임없는 노출에 의해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세뇌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정말 지금 이 최신기종 스마트폰이 필요한가? 이전에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는가?
나는 정말 지금 이 옷이 필요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입을 때마다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옷은 어떤 옷인가?
반대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자꾸 짐처럼 느껴지는 물건은 없는지,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일은 없는지, 자꾸 불편해지는 관계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물건, 가치 있는 시간, 소중한 관계인지 점검해 보려 합니다.
시간은 가장 좋은 재판관이라는 라틴어 격언이 생각나요.
내 삶의 여러가지 것들을 내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저울' 위에 달아볼 차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제법 많은 것을 내 삶에서 비워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의 여백은 분명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