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늘 미루게 되는 이유
어느덧 한 달 만에 글을 쓰게 되었네요. 8월에 여러 사정으로 일상의 루틴이 깨지면서 시작된 슬럼프가 9월 추석연휴까지 이어진 느낌입니다. 연휴 때 잠도 푹 자고, 매일 사무실 나와서 조금씩 할 일들을 하면서 다시 원래의 컨디션과 루틴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 가지 잘한 게 있다면 나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8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3회 이상은 꼭 헬스장에 가서 PT를 받거나 PT 받은 내용을 혼자서 복습하는 식으로 운동하고 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순간은 어떤 식으로든 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운동 왕초보지만,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상하게 독서와 공통점을 많이 찾아 되어서 신기합니다. 독서든 운동이든 혹은 다른 어떤 일이든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은 보편적으로 비슷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운동하면서 느낀 독서와의 공통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합니다.
1. 재미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저는 독서의 시작점은 늘 "재미"에 두고 사람들마다 다른 취향에 맞도록 각자의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운동도 우선은 재미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우선 가장 재미있는 건 내 몸에 새로운 감각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이전에 거의 쓰지 않아서 몰랐던 내 몸 구석구석의 다양한 근육들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운동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근육통이 찾아오거든요. ㅎㅎ
처음에는 이 근육통이 불편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는데, 참 신기하게도 운동 횟수가 늘고 반복할수록 근육통이 올 정도로 강도 높게 하지 않으면 뭔가 운동한 것 같지가 않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독서도 비슷합니다. 책을 멀리하던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저 몇 장을 읽는 것도 버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츰 독서에 익숙해지고 꾸준히 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강도 높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거든요. 이런 경험들은 참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묘한 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체험들을 통해 이젠 제법 운동에 재미가 붙은 느낌입니다. 운동하면서 즐겁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2. 한계에서 성장한다.
내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고 그게 근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근육이 늘어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움직임이나 무게를 반복한 이후에 더 이상 하기 어렵다고 느낄 만큼 힘들게 해야 합니다.
독서도 비슷한데요. 특히 속독을 훈련할 때 비슷한 방식이 적용됩니다.
우리 뇌는 평소에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어떤 범위를 컴포트존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독서든 운동이든 이 컴포트존 내에서 벌어지는 건 '일상'의 연장이지,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당연히 변화도 없는 것이죠.
땀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걷는 것은 노동이지 운동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깊이 공감합니다. 단순히 책을 펼쳐서 눈으로 활자를 읽는다고 해서 독서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생각과 만나고, 교감하면서 내 생각을 하나씩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진짜 독서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운동도 내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변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계까지 움직여 봐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거의 운동을 안 했기 때문에 아주 가벼운 무게만으로도 근육통이 생기고, 정말 쉬워 보이는 자세인데 몇 번만 반복하면 금세 지치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실질적인 경험은 나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바꿔주게 됩니다. 그냥 눈으로 봤을 때는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이던 것들, 쉬워 보이는 일들이 직접 해보면 다르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그 동작이나 행동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PT 쌤이 알려주시고 나면 꼭 따로 나와서 혼자 그 동작을 연습하면서 스스로 내 몸에서 느껴지는 자극과 통증 등의 여러 감각들을 느껴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3. 현재의 나를 적나라하게 인식한다.
한계라고 하면 엄청나게 힘든 상황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 같은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누구나 들 수 있는 가벼운 아령을 양팔에 들고 20번씩 3-4세트를 반복하는 5분도 안 걸리는 행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한계와 실제 내 몸이 느끼는 한계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운동을 좋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면 나의 비루한 몸 상태를 강제로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 유쾌한 경험도 아니고, 그저 인식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불편했을 테지요. 그러니 심리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인 외면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장의 시작은 현재 나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독서를 통해서 그걸 배웠기 때문에 배 나오고, 나이 들고, 저질체력인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매 번 운동(독서)을 할 때마다 더 나아지는 자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 한번 더 반복하겠습니다.
성장하고 싶다면,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정말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합니다.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태의 나부터 아껴줘야 합니다.
독서나 운동처럼 나에게 이로운 걸 알지만 당장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내 마음속에 부족한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깔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라마나 영화, 유튜브 등으로 대신 나를 충족시켜 주는 도파민 자극에 나를 방치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저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그런 나로 머물지 않게 됩니다. 저는 여러 번 경험했지만 늘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번에 운동을 하면서도 정말 꼴사나운 저를 마주했습니다. 말도 안 되게 가벼운 무게로 운동하면서도 헉헉되는 제 모습이 참 안쓰럽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괜찮습니다. 꼴사나운 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동안 운동을 소홀해 온 결과에 불과하니까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부끄러워하진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운동하러 와서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듯이, 헬스장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외부의 시선이나 부끄러움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이전의 나와 오늘의 나만 비교하면 될 뿐입니다.
4.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
밥 먹을 때 아내와 딸은 저를 많이 부려먹습니다. 아내는 식사를 준비할 때, 딸은 목이 마를 때가 대표적이지요. 다행히 제가 그런 것들을 크게 귀찮아하지 않는 편이라 이것저것 대신 해주는 편입니다. 이처럼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줘서 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운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반대로 아내는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차도 아내가 끌고 다니고, 평소에 운전도 아내가 훨씬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 대신 운전해 주니 편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독서와 운동만큼은 아무도 나 대신해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대신해줄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의 결과는 고스란히 대신해준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겠죠.
반대로 말하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책을 읽고, 나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나 열심히 운동해서 더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몸을 만드는 일 모두 아무도 나에게서 뺏어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통 살다 보면 그렇지가 않잖아요.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내가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많이 일한다고 늘 그 보상을 내가 받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반대로 내가 딱히 한 건 없는데, 운 좋게 좋은 성과가 날 때고 있고요.
그런데 이 독서와 운동은 너무나 정직합니다. 딱 내가 밀도 높게 수행한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저는 그저께는 가슴운동, 어제는 어깨운동을 했는데요. 가슴과 어깨 곳곳이 당깁니다. 근육통이 있다는 게 이제는 운동을 제대로 했다는 시그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참 정직하지 않나요? 마무리로 사이클도 강도 높게 하긴 했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10분만 했더니 다리는 멀쩡합니다.
자동차는 휘발유가 가진 열량의 25% 정도만이 운동에너지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우리도 독서나 운동을 하는 시간 전부가 내 성장으로 직결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성장한 결과는 오롯이 내 몫이라는 점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겠지요.
5. 해야 하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역시나 미루고 만다.
제가 이렇게 떠들어 대지 않아도 이미 독서와 운동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그 중요성과 당위성을 반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익히 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어제도 오늘도 미루고 맙니다.
아마 이 2가지를 매일 미루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남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들은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바로 그 일을 꾸준히 했을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을 듣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체로 후회하는 일은 끝난 뒤보다 시작하기 전에 더 좋고, 대체로 보람된 일은 시작하기 전엔 싫어도 끝내고 나면 더 좋다고 말이죠. 운동이나 독서 둘 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죠?
그러니 다시 첫 번째 이유로 돌아가서 스스로 나에게 의미 있는 이 일들을 스스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습관을 잡아주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결론 : 지금 당장 시작할 것
운동이나 독서 모두 새해부터 하겠다고 미루지 마시고, 오늘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시간이 너무 늦었다면 내일 방문해 볼 집 근처나 회사 근처 헬스장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거예요.
시간이 늦었지만, 저도 오늘 운동을 다녀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