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마지막까지 태양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의 너는 어제와 같은 너인가.

by 변대원

수면부족문제로 3달 정도 멈추었던 새벽독서를 연말연시 핑계로 다시 딱 열흘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트레이너의 조언대로 "의무적으로"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이 자려고 노력했는데, 새벽독서를 하는 동안은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피곤합니다. 그런데 그 피곤함을 상쇄하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 무렵 새벽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운 좋게 책상 뒤편 창밖으로 높은 건물들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들을 체험할 수 있거든요.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노트에 글을 쓰는 시간 동안 시시각각 은은하게 노란빛과 하늘빛의 그라데이션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충만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 오늘도 하루를 선물 받았구나.

나는 오늘도 살아있고, 나의 삶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구나.


편안함과 기쁨, 충만함과 감사함이 공존하는 차분한 시간들이 느리게 흘러가며 아침이 찾아옵니다.

새벽은 나의 안부를 묻습니다.


오늘의 너는 어제와 같은 너인가.


태양은 어제와 같은 태도로 변함없이 나에게 말합니다.


어제까지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이,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창조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창밖은 더 환해졌습니다.

태양은 하루를 선물하며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이처럼 내 마음과 하루도 비추어 줍니다.


새벽에 마주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개념적 정체성이란 그가 누구이고 과거에는 무엇을 했다는 내 나름의 주관적 판단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전념, 즉 깨어있는 고요함이다.


이 문장에 빗대어 보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란 내가 기억하는 과거를 바탕으로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주관적 판단일 겁니다. 하지만 고요함 속에 깨어나보면 훨씬 더 확장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곧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 단추가 됩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없습니다.

영어 단어 'END'와 'AND'가 모두 같은 '앤드'인 이유입니다. 끝이 아니라 이어지는 다음이 있을 뿐입니다.

밤이 끝나면 새벽이 찾아오고, 한 해가 지나가면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듯이 말이죠.


다만 1년이라는 시간을 '구분'하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 생각해 봅니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 그 시간의 합을 들여다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이제 저 멀리 높은 빌딩 뒤로 주황색으로 빛나는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저토록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오는데 대답해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나 역시 더 진지하게 하루 같은 한 해를 돌아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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