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에 대하여
일주일정도 휴가를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여행과 일상은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건 하루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제 오늘부터 다시 일상의 루틴을 좀 더 잡아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바로 청소입니다.
여행을 다녀와 오래 집을 비우기도 했고, 짐정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청소는 필수입니다. 환기를 시키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오염을 제거하고, 정돈을 하는 순서입니다.
더러워진 곳에 깨끗하게 만드는 건 2가지 방식이 있잖아요. 환기와 오염제거는 흔히 우리가 아는 청소에 해당합니다. 물리적 오염(공기, 바닥, 물건 등)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정리정돈인데요. 일종의 공간 재배치입니다.
정리는 버리는 것이 핵심이고, 정돈은 남은 것을 제자리에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청소나 정리정돈을 잘하고 못하고의 가장 큰 차이는 얼마나 잘 버리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 치워도 자꾸 물건이 쌓여 공간이 부족해지면 정리된 느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정리하지 않으면 정돈되지 않는 이치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시작이나 창조가 어려운 이유는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때 기존의 시간은 전혀 비우지 않고, 새로운 시간만 욱여넣으려고만 하면 제대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기존의 시간을 비우고 여백을 만드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렇게 빈 시간에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채워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꾀할 때는 늘 청소를 먼저 합니다. 하나의 리츄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공간의 더러움을 지워내고,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 정돈하고 나면 한결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습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야 합니다. 만약 늘 뭔가 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면, 이미 물이 가득 찬 잔에 새로운 물을 부었던 것일지 모릅니다. 저 역시 오늘부터 강의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되는데, 글을 쓰고 강의하기 위한 시간을 먼저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 합니다.
비움은 과거를 떠나 미래를 받아들이는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