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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옷 잘 입는 사람

당연함의 기준

by 변대원

저는 패션감각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다가 20대에 옷매장 매니저로 일하면서 딱 최소한의 패션 정도만 습득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옷 잘 입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잘 어울리는 옷을 한번 사면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사서 돌려가며 계속 입는 편입니다. 적어도 뭘 입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지인을 만났는데, 저를 보더니 옷을 참 세련되게 잘 입는다고 칭찬해 주시더군요.

'그럴 리가요'라며 반문했지만, 그분 기준에서 저는 저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잘 입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마다 무언가를 해석하고 판단할 때 기준점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기준점을 삼은 사람들은 저보다 훨씬 패션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그 이하 정도의 수준이라고 느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평소에 옷 입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기준인 사람의 경우에는 그저 단정하게 입었을 뿐인데도 옷을 잘 입는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미적 감각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요. 저희 가족은 아버님이 홍대 미대출신, 어머님은 꽃예술 전문가, 동생은 이대 미대 출신이다 보니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가장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 우리 가족들의 기준이 무척 높았을 뿐, 제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제법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서당개 삼 년, 아니 20년 이상의 집안 환경이 분명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세상은 기준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저는 30대 중반까지도 미적기준이 늘 함량미달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작긴 하지만 디자인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늘 스스로 옷을 잘 못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제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아 입고 다니게 된 스타일이 누군가에겐 옷 잘 입는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신기합니다.


여기서 생각을 조금 확장해 보면 재미있어집니다.

저는 30대까지 책을 너무 느리게 읽어서 스스로 너무나 답답해했던 사람인데, 독서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서 하루에 한 권 정도 읽는 건 제법 간단한 일이 되어 버렸는데요. 아마 책을 대하는 제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20대까지는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것도 제게는 큰돈이었는데요. 서른이 될 무렵에는 억대연봉이 되어 한 달에 500만 원을 벌면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1000만 원 정도 벌어야 열심히 살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돈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어떤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를 당연하게 느끼는 그 기준이 결국 그 사람의 일상이 될 테니까 말이죠.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들을 스스로 명확하게 정립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운동을 하면서 뒤늦게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아직은 큰 변화가 보이진 않지만, 운동에 대한 기준, 패션에 대한 기준이 바뀌고 조금씩 그 당연한 지점을 바꿔나가다 보면 어느 날에는 제법 옷도 잘 입고, 핏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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