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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마음껏 먹을 자유, 먹을 것에서의 자유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유를 추구한다

by 변대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자유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고, 달콤하면서도 짧조름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1차원적인 자유에서부터, 내 시간을 들여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고차원적 자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은 자유를 빼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 자유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매력적인 자유는 '책을 읽을 자유'라 하겠다.

앗, 치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책이야기라니 혹 배신감이 들었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읽어보길 바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마치 마음껏 숨 쉴 수 있어서 공기를 잊고 사는 것처럼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이라서 한 두문장으로 와닿게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다.

이 단어 하나만 온전히 이해해도 감히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유(自由)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당장 오늘 회사를 그만두면 꼴 보기 싫은 직장상사, 조직의 압박, 불필요한 관계, 과중한 업무 등에서 바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상황적 자유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수입 내에서의 경제적 자유를 상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일을 그만두어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경제적 시간적 자유가 확보될 때만 느낄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우리가 뷔페에 가면 먹고 싶을 온갖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때의 자유는 선택적이고 상황적 자유다. 반대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의 건강과 컨디션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먹으며 절제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이때의 자유는 결정능력을 기반으로 한 능동적인 자유다.

이처럼 자유는 단순하지 않다.


슬라예보 지젝은 <자유론>에서 이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한다.


과연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자유인가? 아니면 왜 우리가 햄버거를 욕망하게 되었는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가?


흔히 리버티(Liberty)로 해석될 수 있는 정치적이고 법적 권리 중심의 자유가 있다. 외부의 간섭 없는 선택 가능성을 가진 상태라고 하겠다. 표현의 자유나 투표권이 보장되는 것이 이런 자유다.

반면에 프리덤(Freedom)은 조금 더 실존적이고 정신적 해방 중심의 자유다. 헤겔, 칸트, 지젝 등의 철학자가 말하는 "내적 해방과 자기 결정 능력"을 의미한다. 이때의 자유는 뷔페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을 욕망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 주체화가 핵심이라고 하겠다.


자유를 설명하려다 보니 조금 멀리 갔지만, 다시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모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가 24시간이지만, 회사에서 일하는데 8시간 이상을 쓰고, 출퇴근에 1시간 이상, 자는데도 최소한 6시간 이상은 써야 한다. 밥 먹는 시간도 하루 세끼 최소한 1-2시간은 소모하게 될 것이고, 또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쓰게 되는 시간도 있다. 결국 내가 온전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4-5시간 정도인데, 그마저도 다른 시간에 이미 고갈된 에너지로 인해 그냥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식으로 보내기 일쑤다.

정말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더욱 자유를 갈망하게 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고, 주말만 기다리게 되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스스로 충분한 내적 해방과 자기 결정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을 자유"는 우리의 삶이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세련된 방법이자, 권리다.

물론 너무 중요해서 어렸을 때부터 20년 가까이를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시험과 성적을 위한 도구로써의 독서만 하다 보니 질릴 대로 질려버려서 싫어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라가 나서서 그렇게 공부를 시키고, 사람들이 거의 가지도 않는 도서관을 곳곳에 만들고, 국가의 예산을 들여서 아무 대가 없이 책을 빌려주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해서일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놀라운 가치를 책을 수백 권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시험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오직 내 삶을 위한 독서, 내적 성장을 위한 독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이 지금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새로운 세상을 엿본 셈이다.

당신이 가진 책을 읽을 자유, 아니 그 권리를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차라리 평생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깨달음이 커질수록 나를 왜 더 일찍 열심히 독서하지 않았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독서는 우리 삶의 자유로 이어진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 본 사람만이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된다.

이미 가본 사람들이 그토록 목놓아 그 길로 오라고 소리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는 매일 내 시간의 일부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나에게 조금 더 이롭게 쓸 것인지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지혜와 습관은 한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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